피난교회를 ‘문화재’로 등록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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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포 피난교회는 6·25전쟁 중이던 1951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피난민과 제주성도들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의료봉사를 펼쳤고, 육지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봉사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 중심에 있었던 피난교회의 석조건물이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유적지화할 수 있을지,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세계유산본부 역사문화재과 주무관은 기자의 이야기를 듣더니, 문화재보호법 제34조를 펼치고 볼펜으로 조목조목 짚어주며 설명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기자는 마음속으로 피난교회가 과연 조건에 부합하는지 체크하기 시작했다.
△ 건설·제작·형성된 후 50년이 지나야 한다. - 1951년에 세워졌으니, 통과!
△ 역사, 문화, 사회 등 각 분야에서 기념이 되거나 상징성 또는 교육적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 한다. - 성산포 지역에서 충분히 상징성을 가질 수 있으니 이것도 통과!
△ 지역의 역사적 배경이 되고 있으면 그 가치가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이어야 한다. - 지난 며칠 간 취재하며, 어르신들의 기억 속에 살아 숨 쉬는 피난교회를 확인했다. 그러니 이번에도 통과!
기자의 시각에 피난교회는 모든 항목에서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보였다. 문제는 주무관도 기자와 같은 시각인가 하는 것이다.
“피난교회는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는 절차에 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무관의 설명에 따르면 등록문화제는 크게 국가등록문화재와 도등록문화재로 나뉜다. 국가등록문화재의 경우 문화재청이 심사의 주체가 된다. 그만큼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롭다. 도등록문화재는 각 도마다 절차나 조건이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지만, 문화재청과 비교했을 때 다소 간략한 편이다. 그렇기에 주무관은 피난교회는 도등록문화재로 추진하는 것이 받아들여질 확률도 높고 진행도 수월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제주도의 경우 도등록문화재 등록 절차를 세계유산본부에서 진행한다고 했다. 기자는 그제야 서귀포시청 담당주무관이 왜 세계유산본부를 찾아가라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진심을 의심했던 게 미안해졌다.
등록절차의 첫 걸음은 등록신청서 작성이었다. 그러면 세계문화유산 측은 문화재위원회의 해당 분야 위원이나 전문위원 등 관계 전문가 3명 이상에게 해당 문화재에 대한 조사를 요청한다. 조사는 크게 문헌조사와 현장조사로 이뤄지는데, 여기에는 해당 문화재의 상징성이나 역사적 배경을 파악하기 위한 주민들의 인터뷰도 포함된다. 지난 며칠간 기자가 성산포 지역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과 거의 같은 일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피난교회를 문화재로 등록하기 위해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헌과 기록은 훼손되지만 않는다면 언제까지든 기다려 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벌써 당시를 기억하는 어르신들의 연세가 아흔을 넘어서고 있다. 더욱이 인터뷰를 약속한 어르신께서 노환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신 게 불과 며칠 전이다. 문화재 등록 추진이 늦어질수록 길이 좁아질 것이 분명했다. 조사를 마치고 조사보고서가 작성되면 문화재위원들은 보고서 내용을 바탕으로 문화재 등록 여부를 결정한다.
생각보다 등록절차는 간단했다. 문헌자료와 주민들의 증언만 확실하다면 ‘승산’이 있어 보였다. 또한 주무관의 설명에 따르면 이 모든 과정에 평균 6개월이 소요된다. 만약 2024년 상반기에 등록신청서를 작성하고 조사가 이뤄지면 올해가 가기 전, 피난교회는 문화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주무관은 “사안에 따라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수는 있다”고 덧붙이기는 했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모든 과정이 수월해 보였다.
하지만 가장 큰 난관은 문화재 등록신청서에 있었다. 신청서는 해당 문화재의 소유주만이 작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난교회의 경우 현재 건물을 식당으로 운영하고 있는 주인이 될 것이다. 그가 문화재 등록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후의 절차는 시작할 수도 없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교회 차원에서 건물을 매입해 등록절차를 진행하는 것이다.
문화재로 등록된 후에도 소유주의 사유재산권이 인정되는 만큼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비용이 얼마나 발생할지 쉽사리 가늠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만약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충분할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매입해서 등록절차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또는 문화재로 지정된 경우 지자체가 매입할 수도 있다.
이러한 가능성에 관해 주무관은 “선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손에 꼽을 정도로 희귀한 경우여서 가능성이 매우 낮다”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지자체의 예산을 활용해 피난교회를 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주무관이 기자의 얼굴에서 고민의 흔적을 읽었기 때문일까. 그는 “만약 도등록문화재가 불발된다면 향토유산으로 등록하는 길도 있다”고 다른 길을 제시했다. 향토유산은 도등록문화재보다는 한 단계 낮지만 대신 등록절차와 조건도 단순하고 후에 그 가치가 재조명될 수도 있으니 충분히 고려해볼 만했다. 희망과 난관 사이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만남이었다. 어지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일어서려는데 주무관이 말했다.
“제주에 도움의 손길을 펼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덕분에 성산포의 많은 주민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주무관은 당시의 주민들을 대신해 감사 인사를 전했고, 기자는 교회를 대신해 그 인사를 받았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다 큰 어른이 우는 모습을 보일 수 없어 얼른 문을 닫고 나와 화장실에서 세수를 했다.
* 이 기사는 삼육대학교와 삼육서울병원의 지원으로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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