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교회는 적극적 안락사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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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09.06.14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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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atement of Consensus on Care for the Dying
성경에 의해 인도받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죽음의 실재를 죄에 의해 영향을 받는 현 인간 상태의 한 부분으로 인정한다.(창 2:17; 롬 5; 히 9:27).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전도서 3:2). 영생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아들인 모든 이에게 주어진 선물이라 하더라도,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재림을 불멸의 완전한 실현으로서 고대한다(요 3:36; 롬 6:23; 고전 15:51-54). 예수께서 재림하시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아마도 죽음으로부터 도와주시거나 그들 자신의 죽음을 개인적으로 직면하게 해달라고 청할지도 모른다.
고통과 고난은 각 인간의 삶을 괴롭힌다.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정서적 충격은 보편적이다. 그러나 인간의 고난은 보상이 있거나 공훈 있는 가치가 아니다. 성경은 인간의 고통이 아무리 많고 강도가 높아도 죄를 위해 속죄할 수 없다고 가르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만이 충분하다.
성경은 그들로 고난 속에서 순종(9히 5:7-8), 끈기(약 1:2-4), 그리고 인내를 배우도록 설득하며 그리스도인들을 고통 속에 절망하지 않도록 부른다. 성경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압도적인 능력(요 16:33)을 증명하고 인간의 고통에 대한 목회가 중요한 그리스도인의 의무(마 25:34-40)라는 것을 가르친다. 이것이 예수의 모본이고 가르침이고(마 9:35; 눅 10:34-36),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 향하신 그의 뜻이다(눅 10:37).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고통을 없애주실 새로운 날을 희망을 갖고 바라보아야 한다(계 21:4).
현대의학의 발달은 죽음에 관여하는 결정의 복잡성까지 더해졌다. 과거에는 인간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작은 일들이 행해졌다. 그러나 오늘날 죽음을 막는 의학의 능력은 어려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들을 발생시켜왔다. 이러한 능력의 사용 앞에서 어떤 제약이 그리스도인 믿음 앞에 놓여 있는가? 누가 이런 결정들을 적절하게 내릴 수 있는가? 한계가 있다손 치더라도 얼마만큼의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인간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서 행동으로 옮겨져야 하는가?
안락사라는 주제 아래 이러한 질문들을 논의하는 것이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이 표현에 대하여 많은 혼동이 존재한다. 이 용어의 근본적이고 글자대로의 의미는 “잘 죽는 것”이다. 현재 이 용어는 두 가지의 다른 의미심장한 방법으로 쓰인다. 종종 안락사는 “존엄사,” 혹은 고통스러운 죽음을 피하거나 환자의 가족이나 사회의 짐을 경감시키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환자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을 나타낸다(이것은 소위 적극적 안락사라고 불린다).
그러나 안락사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의 관점에서 인간생명을 인공적으로 늘리는 의학적 개입을 억제하거나 철회하여 자연스럽게 임종을 맞도록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이것을 소극적 안락사라고 한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앞서 말한 단지 고통을 늘이고 죽음의 순간을 미루는 의학적 개입에 의하여 환자가 임종을 맞도록 하는 것은 바로 생명을 앗아가는 본래의 의도와는 윤리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보호받고 유지될만한 가치가 있는 놀라운 선물(창 1-2)인 인간생명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단언한다. 그들은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는(요 3;15; 17:3)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 또한 확언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세상에서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현대의 의학을 사용하는 것을 지지한다.
그러나 이 능력은 고통을 최소화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는 인정 많은 방법으로 사용되어져야만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새 땅에서의 영원한 삶을 약속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이 지구 위의 마지막 삶의 자취에 근심하며 매달릴 필요가 없다. 단지 죽음의 단계를 연장할 뿐인 모든 가능한 의학 치료법들을 받아들이거나 제공하는 것도 필요치 않다.
모든 사람들을 돌보기로 한 책임 때문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죽음의 물리적, 감정적, 그리고 영적 보살핌에 불안을 느낀다. 이 때문에 그들은 다음의 성서에 기초를 둔 원칙들을 제공한 것이다.
1) 삶의 마지막으로 향하고 있는 사람이 이해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의 상태에 대한 진실, 치료 선택권, 그리고 가능한 결과들을 알 권리가 있다.
2)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고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자유를 책임감 있게 사용하도록 요구하셨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이 자유가 의료에 관한 결정에까지 달한다고 생각한다. 신성한 안내를 찾고 의학적 조언과 마찬가지로 그 결정에 영향 받은 이들의 관심을 숙고하는 것 이후에, 결정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삶을 연장시키는 의학 개입을 받아들일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런 사람들은 그들이 용인할 수 없는 의학적 치료법에 복종하도록 강요 되어서는 안 된다.
3)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들이 가족과 믿음 공동체의 범위 안에서 자라나게 하는 것이다. 인간 삶에 관한 결정은 의학적 권고를 숙고한 이후에 건강한 가족 관계라는 맥락 속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다(창 2:18; 막 10:6-9; 출 20:12; 엡 5-6). 죽어가는 사람이 의학적 개입에 있어서 동의나 더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 할 때 그런 결정들은 그 죽어가는 사람이 선택한 사람으로부터 내려져야 한다.
만약 아무도 선택되지 않았다면, 그 죽어가는 사람과 가까운 사람이 결정을 내려야 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의학이나 법 전문가들은 죽어가는 사람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죽어가는 사람을 위한 의학적 개입에 대한 결정을 연기시켜야 한다. 개인의 희망사항이나 결정들은 서면으로 가장 잘 만들어지고, 그 서면은 현존하는 법적 의무와 일치해야 한다.
4) 그리스도인 사랑은 실제적이고 신뢰할 수 있다(롬 13:8-10; 고전 13; 약 1:27; 2:14-17). 이러한 사랑은 믿음을 부인하지도 않고 우리에게 제공하라고 강요하지도 않고, 또는 가능한 이익보다 큰 짐을 가진 의학적인 중재를 받아들이라고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환자를 정신적 인식 상태로 되돌리는 희망 없이 의학적인 케어가 단지 우리 몸의 기능을 보존해 줄 때, 그것은 무익하고 틀림없이 보류되거나 철회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생명을 연장시키는 의학적 조치는 만약 이것이 환자의 고통이나 죽는 과정을 연장시키는 것이라면 아마 없어지거나 멈춰질 것이다. 어떠한 조치를 취하던지 법적인 지령과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5)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단지 고통을 증가시키고 죽는 것을 연장시키는 보류되거나 철회되어야 하는 의학적인 개입으로 이끌려질 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안락사를 시행해서는 안 되며 자살을 도와주어서도 안 된다(창 9:5-6; 출 20:13; 23:7). 그것들은 의도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나 죽어가는 사람의 삶을 앗아가는 적극적 안락사에 반하는 것이다.
6) 그리스도인 동정심은 고통의 경감을 불러낸다(마 25:34-40; 눅 10:29-37). 죽어가는 사람을 위한 간호를 함에 있어서, 적극적 안락사를 포함하지 않고 가능한 최대로 고통과 아픔을 경감시켜 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의학적 개입이 환자를 치료할 것이 분명할 때, 간호의 최우선적인 목표는 고통으로부터의 경감으로 바뀌어야 한다.
7) 정당성의 성서적 원칙은 추가적인 간호는 무방비 상태이고 남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 베풀어져야 한다고 규정한다(시 82:3-4; 잠 24:11-12; 사 1:1-18; 미 6:8; 눅 1:52-54). 그들의 상처 받기 쉬운 상태 때문에, 그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그들은 불공정한 차별 대우 없이 그들의 위엄을 위해 존경을 갖고 치료받고 있다고 확실히 하기 위하여 특별한 간호가 실행되어야 한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간호는 그들의 영적이고 의학적 필요, 그리고 그들의 사회적 존엄성의 개념보다는 그들이 표현한 선택에 기초되어야 한다(약 2:1-9).
8)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이 이러한 원칙들을 적용하려고 노력하는 동안,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고 그들의 복지를 위하여 기적적으로 일하는 것이 가능하시다는 사실로부터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시 103:1-5; 약 5:13-16). 예수님의 모본을 따르면서, 그들은 또한 모든 것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자 기도한다.(마 26:39).
그들은 고통 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육적이고 영적인 필요를 돕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구할 수 있다는 것에 자신만만해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로 하여금 역경을 참아 내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데 충분하다는 것을 안다(시 50:14-15). 그들은 예수님 안에 믿음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은 하나님의 사랑의 승리 속에서 안전하다는 것을 믿는다.
이 일치된 의견은 1992년 10월 9일 메릴랜드 주의 실버스프링에서 열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연례행정위원회에서 승인되고 가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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