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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삼육대학교 신학대학원장 이종근 교수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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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6.02.17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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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양심 위해 공동생활 영위하며 민족혼 지킨 유일한 공동체”
이종근 교수는 “적목리 신앙유적지는 일제강점기, 신앙양심을 지키기 위해 공동생활을 영위하며 민족혼을 지킨 유일한 공동체”라고 의미를 조명했다.
가평군 적목리신앙공동체의 원래의 지점인 가평군 북면 적목리 산 1-28번지의 위의 유적지가 2015년 12월 2일 가평군 향토문화재위원회의 결의를 거쳐 가평군 향토문화재로 지정고시되었다(가평군 향토문화재 제 13-1,2호).

적목리는 가평역에서 서북쪽으로 약 35Km 지점의 의 당시 100리길, 걸어서 만 하루가 걸리는 심산계곡이었다. 이곳은 마치 높이 솟은 양 계곡 샛길로 고개를 쳐들면 하늘만 빠끔히 올려다 보이는 듯한 깊은 산속의 골짜기로 적목리 주목(朱木)이란 나무에서 유래되었다.

주목은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단단하여 적갈색의 가구나 철도 침목에 쓰이는 나무였다. 주목이라는 나무와 그 색깔의 이름을 따서 지명을 적목리(赤木里)라고 불렀다.

일제강점기 말 신사참배가 강요되고 교회가 해산되며, 조선의 젊은이들이 강제징병과 징용 및 학도병이란 미명으로 전쟁터로 끌려가고, 처녀들은 위안부로 차출되어 꽃다운 젊음을 산화시켰던 절체절명의 위기 시에 일제의 제국정책을 거부하고 재림신앙을 지키기 위해 재림신자들이 피신했던 곳이다.

1943년 9월부터 1945년 8월 해방될 때까지 70여명의 재림신자들이 신태식 목사와 반내현 목사 등의 지도하에 25평 정도의 반지하 움막교회를 중심으로 원시적인 움막을 짓고 공동체 생활을 하며 진리와 신앙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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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는 당시 경춘철도임업주식회사의 철도침목을 만드는 벌목 작업을 하청받아 작업 명단에 올라간 14명의 어른들이 받는 1인 3홉의 배급으로는 전국에서 모여든 많은 청년들의 수요를 채우기에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은” 태부족의 상태로 늘 배고픔에 시달렸다. 그래서 독이 없는 모든 풀을 뜯어 먹고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벗겨 먹으며 연명했다.

특히 소나무 껍질을 벗겨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송기떡으로 배고픔을 달랬는데, 이를 먹을 경우 소화와 용변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초대교회처럼 유무상통하면서(행 1:42-47), 작업과 기도, 예배 및 성경연구 등으로 오직 믿음으로 만난(萬難)을 극복하면서 견뎌냈다. 새벽마다 집에는 잠자는 어린아이들을 제외하고는 각자 산골짜기로 들어가 산 전체가 울음소리와 기도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반내현 목사 등 일부 지도자들은 일제의 패망을 확신하고 경향각지로 다니면서 활발한 전도활동으로 많은 교회를 세우며 지도자를 양성했다. 이들은 사선을 넘어 전국을 순회하며 신앙심을 고취시키고 민족혼을 일깨우며 계몽했다. 움막생활의 이 공동체는 비가 오면 빗물, 눈이 오면 눈물을 맞으면서도 신앙의 자유를 위해 피신해 오는 모든 사람들을 환영했다.

그동안 일제 헌병대의 급습 이후 신태복 장로 등 몇 가정이 위의 원래 장소에서 가평방향 약 1km 지점으로 옮겨 머물다가 해방을 맞았다는 증언을 근거로 아랫장소가 1999년 12월 29일자로 가평군 향토유적지로 먼저 지정됐지만, 신앙 선구자들이 원래의 거주했던 공간도 향토유적으로 지정받으려는 시도가 삼육대 신학대학원(원장 안금영, 교학부장/ 신학과장 이종근)에 의해 오랫동안 진행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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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원래의 공간인 윗유적지가 향토유적 지정이 되지 않아 안내표지판 등이 없는 관계로 행락객들의 야영과 취사, 그리고 고로쇠 작업일터 등으로 전략되어 유적지가 크게 훼손되고 보전이 어려운 처지에 이르게 되어 향토유적 지정을 서두르게 되었다. 가평군 향토문화재보호위원회에서 한국의 관련 전문학회의 학술발표와 공인된 학술지의 논문게재, 매장문화재 전문가의 발굴조사보고서 등 여러 과정에 대한 제출요구 등을 충족시켜 이번 가평군은 적목리신앙유적지를 적목리공동생활 향토문화재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적목리신앙공동체는 한반도에서는 현재까지 민초들이 신앙양심을 지키기 위해 피신하여 집단적으로 공동생활을 영위하며 민족혼을 지킨 유일한 공동체이다. 이와 유사한 재림신앙공동체들이 휴전선 너머 철의 삼각지의 하송관, 이북의 평양 순안, 서울, 지리산과 태백산에도 있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진리와 신앙을 수호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재산과 명예 그리고 개인사의 모든 것을 바치고, 역경을 감내한 이들은 한반도 내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특이한 기독교 신앙공동체로, 한국 재림교회의 신앙행전이며 세계의 자랑거리다.

적목리신앙공동체는 일제강점기 민족고난의 심장부에 심어 놓으신 재림신앙의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재림교회의 신앙과 선교 부흥을 위한 횃불로서의 의미가 지대한다. 한국재림교회의 적목리신앙공동체는 한민족운동사와 한국기독교사의 한 장을 새로 써야 할 장거로 전문 학회에서 평가받기도 했다.

이 공동체의 복원을 위해 도움을 주신 여러분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일제시대 모든 것을 희생하며 공동체를 이끄시고 지도하셨던 고 신태식 목사님과 반내현 목사님을 위시한 재림신앙의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운 여러 어른들과 후손들, 자료복원에 도움을 주신 북한교회사가인 김재신 목사님, 적목리신앙공동체에 대한 교단적 관심과 복원의 중요성을 선구적으로 일깨워 주시고 시도하신 재림교회사가인 오만규 교수님, 행정적 지도와 도움을 주신 고 신계훈 전 연합회장이자 삼육대학 총장, 남대극 전 삼육대학 총장, 안금영 전 삼육대 신학대학원장, 현 삼육대학 김용선 박물관장과 박성교 팀장, 그리고 한국연합회 전 총무 문치양 목사님, 현 홍보부장 엄덕현 목사님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이 공동체 복원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은 신학생들과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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