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 발마사지봉사대 조직위 승인 이끈 이하익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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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 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8.03.1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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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관 있었지만, 결국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신앙체험
이제 내일이면 올림픽 경기가 끝난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난다.
나는 한국전력공사에서 20년을 근무하고, 41세의 젊은 나이에 명예퇴직을 했다. 1991년 11월 하나님을 만나고, 이듬해 4월 2일 침례를 받았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본사 근무에서 교대 근무를 하는 사업소로 자청해 옮겼다. 토요일에는 교회에 갈 수 있었지만, 금요일 밤 근무는 피할 수 없었다. 진리를 알면서도 안식일을 제대로 성수하지 못한다는 괴로움에 근무처 구석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밤샘기도를 드린 게 하루이틀이 아니다.
명예퇴직 신청대상이 20년 이상 근무, 50세 이상 연령이어야 했기에, 당시 나로서는 9년이나 더 기다려야 했다.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당장이라도 그만두어야 함이 분명했지만, 생계의 부담이 컸다. 고뇌와 갈등 속에 기도하던 중, 사규가 변경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근속기간이 20년을 넘거나 연령이 50세가 넘으면 명예퇴직을 신청할 수 있도록 바뀐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나 한 사람을 위해서도 세상의 법을 바꾸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귀한 경험이었다. 드디어 20년 1일째 되던 날, 나는 명예퇴직을 신청해 안식일을 온전히 지킬 수 있게 됐다. 1997년의 일이다.
그 뒤로 가장 큰 사건이 바로 이번 동계올림픽이다. 2015년 5월 13일. 나는 58세의 나이에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에 계약직 직원으로 입사했다. 알펜시아리조트, 슬라이딩센터, 크로스컨트리코스 등 8개의 올림픽경기장 전체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초고압변전소를 계획하고, 설계해 한국전력에서 건설하도록 인계하는 역할이었다. 또 IOC의 테크니컬 매뉴얼에 맞춰 8개 경기장의 설비를 건설, 관리감독하는 일이었다.
작년 이맘때쯤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왜 여기로 보내셨을까?’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에 늘 함께 하셨던 하나님은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기를 원하실까?’라는 질문이 며칠 동안 계속 마음 가운데 맴돌았다. 그러던 중 여의도 말씀진리교회에서 발마사지교육을 하고 있는 김석훈 목사님 부부와 남선규 장로님의 봉사를 경험했다. 이들의 활동을 본 순간 ‘그래! 이 봉사를 올림픽에서 하자’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우선 기획안을 만들었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조직위원장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나 같은 일개 직원이 건의한다고 해서 풀릴 문제가 아니었다. 전세계적 매머드급 이벤트인 올림픽에서 자기를 알리거나 기회를 잡으려 수많은 봉사단체들이 줄을 서 있을 게 뻔했다. 별별 구상을 다해 봤지만, 뾰족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지난 경험상 이런 문제는 늘 부딪혀야 해결된다는 걸 알았다. 선한 일은 내가 하는 것 같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그분의 도구로서 열심히 움직이면 되는 거다. 그날부터 나는 담당자들을 찾아다니며 설명하고 설득했다. 그러나 대부분 난색을 표하며 고개를 절래절래 가로저었다. 책임질 일을 굳이 만들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너무 무모한 도전이었나?’라는 생각에 실망감이 커졌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평소 친분이 두텁던 베뉴운영부서의 한 동료에게 “올림픽 기간 동안 중노동에 시달리는 스태프나 자원봉사자들에게 발마사지 봉사를 해 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좋은 일이지만, AD카드 발급이나 장소를 확보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흘러가듯 말했다. 그러다 “스포츠파크운영센터로 쓸 골프클럽하우스의 모든 공간은 운영진만 사용할 수 있지만, 목욕탕과 파우더룸은 아직 계획이 없다”고 귀띔했다.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쏜살같이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놓으신 거룩한 봉사의 장소가 눈앞에 펼쳐졌다. 뛰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락커와 락커룸 사이는 마사지베드를 놓기에 딱 좋은 사이즈였다. 아직 장소사용 승인을 받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열심히 봉사할 대원들의 모습이 벌써부터 상상됐다. 그때부터 운영부서 핵심 매니저를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가 간청했다. 결국 한 달이 넘는 검토 끝에 장소사용 허가 결정이 났다.
이제 본격적인 준비가 필요했다. 김석훈 목사님은 봉사단 활동계획과 준비를 담당했다. 남선규 장로님은 인력구성 및 훈련, 재정지원 등을 맡았다.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에서 약 50명의 성도가 참가신청을 했다. 미국에서도 3명의 봉사자가 참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또 다시 장애물을 넘어야 했다. 봉사대원 출입카드를 발급받는 일이었다.
부서별로 정원이 고정되어 있어 내 권한으로 발급받을 수 있는 카드는 3명에 불과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미국에서는 이미 비행기 티켓을 구입했다는 이야기까지 들렸다. 그때부터 나의 씨름은 다시 시작됐다. 하나님의 일이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리라 믿으며, 평소 깊은 신뢰감을 갖고 있던 담당자와 문제를 상의했다. 드디어 지난해 12월 말, 기적처럼 40명의 출입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말 할 수 없는 감동과 감사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곧 봉사대원들의 명단을 경기장 등록부서에 제출했다. 하지만 또 다시 적신호가 켜졌다. 신원조회 메일이 각자에게 와야 하는데 아무도 받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담당자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수차례 물었지만, 잘 모르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등록부서와 허가부서 사이의 어디선가 막힌 게 분명했다.
추적에 나섰다. 허가부서에서는 아직 서류가 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 출입카드 경우 등록부서에서 신원조회 메일을 보내주어야 하는데, 경기장 등록부서는 다른 카드 경우는 자동으로 릴리즈하기 때문에 별도의 조치가 필요치 않았다고 했다. 숨통이 트였다. 등록부서에 부탁해 수동으로 일일이 신원조회 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개막까지 열흘 남짓 밖에 남지 않아 신원조회 기간이 또 얼마나 걸릴지 몰랐다. 한명이라도 발급되지 않으면 낭패였다.
그 길로 발행부서로 쫓아갔다. 그곳에는 마침 나와 1년 전 함께 근무했던 직원이 인력등록발행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 경기장 관할이었다. ‘할렐루야!’라는 탄성이 절로 튀어나왔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적재적소에 ‘돕는 손’을 배치해 두고 계셨다. 그 중요한 시기에, 그 직원이, 담당 부서에서 일하고 있어 40명의 봉사대원이 전원 출입카드를 발급 받을 수 있었다.
허가를 받아 선수라운지 등 경기장 곳곳에 발마사지 무료봉사 포스터를 붙였다. 운영센터 1층 로비에는 입식 배너광고를 세우고, 접수처를 만들었다. 난방과 온수도 동료들의 적극적 협조로 해결됐다. 삼육서울병원은 침대커버, 수건 등 필요한 물품을 후원했다. 점점 입소문을 타며 반응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덩달아 봉사자들의 열정도 뜨거워졌다.
처음에는 봉사자의 피로도 등을 고려해 서비스시간을 오후 2시부터 6시까지로 했지만, 오전시간까지 늘려야 했다. 매일 100명 가까운 사람이 현장을 찾았다. 대부분 자원봉사자와 경기운영 파트 스태프였다. 주로 설상 종목이 진행된 이곳에는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를 견뎌야 했다. 혹한의 날씨에 야외에서 근무하는 인력은 감기와 저체온증에 시달렸다.
봉사를 받은 사람들은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경기장 청소를 하는 한 나이 많은 직원은 “추위와 싸우면서 일을 하는데, 발마사지를 받은 후로는 몸이 아프지 않아 좋다”며 호주머니에 싸온 과자와 사탕을 건네주고 갔다. 파견 나온 소방대원은 자신도 지역주민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데, 발마사지를 배우고 싶다고 해 거주지 인근의 재림교회를 소개해 주기도 했다.
올림픽에서는 선수나 참가자가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드러내거나 특정 종교를 강권할 수 없다. 우리도 이 점을 늘 유의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기독교 단체에서 나오셨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고 요청하는 사람이 늘었다. 신기하게도 봉사대의 정체성은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재림교회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 세 천사의 기별을 전했다. 전혀 거부감이나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미리 준비해 간 <생애의 빛>도 큰 역할을 했다. 당초 원하는 분들이 자발적으로 가져가도록 권유했는데, 나중에는 가족에게도 주겠다며 더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생명의 말씀이 담긴 책자를 예쁘게 디자인한 봉투에 담아 “이거 정말 좋은 책인데, 한 번 읽어보세요”라고 건네면 “정말 고맙다”고 인사하며 받아갔다. 사람들은 그 책을 함부로 버리지 못했다. 우리의 진정성이 담긴 선물은 결코 헛되이 버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며, 이야말로 참다운 전도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발마사지에 투입되지 않는 인력은 차량운행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했다. 아내와 송남순 집사님은 30명이 넘는 인력을 매일 반복해 운송했다. 어떤 날은 10번이 넘도록 왕복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올리브치과원장 조영학 장로님은 봉사에 참여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이처럼 너나 없는 연합의 정신으로 발마사지봉사대는 17일간 총 1053명에게 사랑의 손길을 펼쳤다. 너무 오랜 기간 하다 보니 피로가 누적되고, 부상자도 속출했다. 그러나 이들의 봉사는 그칠 줄 몰랐다. 패럴림픽으로 이어졌다. AD카드 신청 마감일에 20명의 대원이 등록부서에 명단을 제출했다.
최소 10명은 돼야 가능하다는 말에 북아태지회 권정행 목사님이 미국에 직접 전화를 해 “자고 있는 분들을 깨워” 설득했고, 순식간에 식사와 차량운행 봉사자까지 인력이 꾸려졌다. 이제 내일이면 새로운 대원들의, 새로운 봉사가 시작된다.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어떤 새로운 영혼을 만나, 어떤 식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증거될 지 기대된다. 걱정보다 설렘이 더 앞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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