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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꿈꾸는 김원 양의 ‘인생 벧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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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1.07.05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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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피바디 음대 유학 준비하며 하나님 계획 묵상
최근 미국동부의 피바디 음대에 합격한 김원 양은 오랜 실패를 지나 마침내 열매를 맺은 요즘이 인생의 벧엘을 걷는 듯 하다.
어린 시절. 아이의 언니는 평소 잘 아는 장로님을 따라다니며 바이올린 레슨을 받았다. 그때부터 아이는 엄마 손을 붙들고 언니가 하는 연주를 보며 바이올린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목회자인 아버지가 새로운 부임지로 갈 때면 자매에게도 변화가 찾아오곤 했다. 가정형편상 고급 레슨을 받을 수 없었던 자매에게 어느 날,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자매는 그렇게 익숙해진 배움의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었다.

아이는 처음으로 바이올린 레슨을 받던 날, 한달음에 동네 언덕을 뛰어 올랐다. 바이올린이 마냥 좋았다. 그날 이후 늘 곁에 바이올린을 두었다. 심지어 잠자리에 들 때도 머리맡에 두고 자야만 안심이 되었다.

6학년 때였다. 어머니의 악기 구입을 위해 서울에 올라왔다. 악기사에서 바이올린을 사달라며 마냥 졸라대는 아이를 보고 사장님은 바이올린을 건네며 한 번 연주해 보라고 했다. 3년간의 방과 후 학습으로 쌓은 연주 실력을 사장님 앞에서 맘껏 뽐냈다.

당시 가정형편을 알 수 없었던 아이는 악기사 사장님이 선물로 주는 바이올린을 받고 날아 갈듯 기뻤다. 뿐만 아니었다. 사장님은 아이가 서울에서 바이올린 레슨을 받을 수 있는 길도 열어주었다.

바이올린 연습은 언제나 행복한 일이었다. 중학교 때였다. 아이는 기숙사 취침시간 후 몰래 삼육대학교 음악연습실에 가서 연습을 했다. 이내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경비가 들이닥쳤다. 그 일이 있은 후 아이는 어두운 밤만 되면 또 다시 연습실로 향했고, 그렇게 경비아저씨와의 숨바꼭질은 반복되었다.

어느 날인가. 현금인출기가 고장 나 레슨비 전액을 선생님께 드리지 못한 일이 있었다. 선생님은 봉투를 열어 금액을 확인하더니 이내 던져버렸다. 아직은 어린 아이에겐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그날 레슨시간은 봉투에 담긴 돈의 액수만큼 단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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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일단 바이올린을 1년 쉬기로 했다. 냉정한 현실을 생각할 때 음악보다 공부가 더 승산이 있어 보였다. 그렇게 1년이 지난 후 원이의 인생에 작지만 큰 결정을 내렸다. 자신의 인생길에 힌트를 주신 하나님을 믿고 도전을 시작했다.

이화여대 기악과에 지원을 했다. 결과는 낙방이었다. 눈높이를 조금 낮춰 경희대 기악과에 지원했지만 또 떨어졌다. 가정형편상 교대를 가기로 마음먹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노력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합격자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다. 수능점수는 괜찮았지만, 예체능을 공부했던 아이로서는 내신이 좋을 리 없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단국대 음악과에 입학했다. 그 즈음, 또다시 고민이 찾아왔다.

‘나의 선택은 올바른 걸까?’ ‘내 인생의 선택은 아직 끝나지 않은 걸까?’

또 한 해를 쉬었다. 다시한번 도전했지만 결과는 제자리였다

자신에게 물었다.

‘내 가슴속 뜨거움은 단순한 젊음의 열정인가?’ ‘인생의 길을 찾을 수 있는 힌트일까?’

1년의 시간을 보내고 캠퍼스로 돌아왔다. 계속된 대학입시에 지치고 상처투성이인 그에게 아빠는 말씀을 권했다. 어느덧 아이에서 청년으로 성숙해진 원이는 자신의 마음에 신앙의 씨앗을 하나둘 심어갔다.

그렇게 시작한 신앙은 대쟁투총서 전권을 읽어 내려갔고 성경 또한 마음에 담기 시작했다. 장현교회 음악선교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봉사의 기쁨도 맛보았다. 어쩌면 자신이 걸어온 현실보다도 못한 아이들. 그들을 생각하며 자신을 돌아보았다. 마음을 나누는 가르침! 그 값진 보물을 하나님께서 알게 하셨다. 그사이 몸도 마음도 한결 건강해졌다.

어린 시절 알게 된 바이올린. 작은 손을 움직여 키워온 음악. 시련 속에서 희망을 연주했고, 또 절망 속에 던져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바이올린은 그를 떠나지 않았고 늘 자신의 곁을 지켜주었다. 우리의 길을 예비하신 주님의 뜻이 있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확신이 있어 더 큰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또 한 번의 도전을 시작했다. 미국에 있는 음대 4곳을 택했다. 우선 자신의 현실과 부합할 수 있는 대학위주로 우선순위를 정해보았다. 그리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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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당일. 연습실에서 들려오는 선율은 정말 대단했다. 긴 기다림 끝에 자신의 순서가 다가왔고 드디어 연습실이 주어졌다. 순간, 잠시 고민에 빠졌지만 성경을 보고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리고 시험장에 들어섰다.

연주가 끝났을 때. 미국인학부모들이 원이를 둘러싸고 ‘어느 나라에서 왔냐’며 칭찬했다. 그렇게 미국의 한 대학에서 후회 없는 연주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혹 불합격이 된다면 아직 자신이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드디어 첫 번째 메일이 도착했다. 낙방이었다. 불합격을 확인하는 일은 자신에게도 무척 슬프고 힘든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싫었다. 그리고 사흘 뒤 또 한 통의 메일이 날아왔다. 숨이 금방이라도 막힐 것 같았다.

지난 4월의 어느 날 아침이었다. 미국동부에 있는 피바디 음대로부터의 합격메일이었다. 생명이 움트는 봄날. 원이에게도 희망의 꽃이 활짝 피어났다. 인생 최고의 날이 되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에 자신을 던졌을 때 하나님이 그를 하나님 앞에 바로 세우시고 협력하여 선을 이루셨듯, 나 또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에 내 자신을 두고 싶다는 각오가 용솟음쳤다. 아직 서툴지만 열심히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어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삶을 기도하며 걸어가겠다는 다짐도 함께.

오랜 실패를 지나 마침내 열매를 맺은 이 순간은 그의 ‘인생의 벧엘’이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기념하는 기념비를 세우고 자신의 미래의 삶도 그 길을 따라갈 것을 확신하고 있는 김원 양의 감동스토리는 안교비디오를 통해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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