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 한송식 목사 ‘21세기 선교 전략과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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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4.12.07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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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적 교회로의 전환 등 새로운 전도 패러다임 시급”
21세기 들어오면서 한국 재림교회는 지난 세기에 경험하였던 지속적인 성장을 더 이상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십 수 년간의 정체기를 거쳐 쇠퇴기로 접어들고 있음을 여러 가지 지표를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한국 재림교회가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감소현상을 보이는 것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그 중 두드러지게 인식되고 공감하는 것을 지적하자면 교회의 중요 사명인 선교의 동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지역교회에 전도열매가 빈약하고, 교회의 관심과 에너지가 점점 더 내부로 향하고 있다. 성도 개개인은 개인의 신앙 유지하기에도 벅차 보이며 삶 속에 전도를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표현되는 21세기 시대상황과 맞물려 교회가 선교동력을 잃어가는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위기의 상황에서 재림교회는 다시 한 번 환골 탈퇴해야 한다. 분명한 정체성과 사명이 있는 교회답게 위기를 딛고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 재림교회는 21세기에 걸 맞는 새로운 선교비전과 전략을 수립하여 적극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성경의 말씀처럼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복음은 변하지 않지만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시대마다 달라질 수 있고,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변화에 대처해 나가지 못하면 한국 재림교회는 머지않아 커다란 위기 속에 완전히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 겨우 명맥만 유지한 채,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생존을 염려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와 같은 위기적 상황과 시대적 필요와 요구, 즉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선교비전과 전략이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어떻게 하면 21세기에 한국 재림교회의 선교동력을 새롭게 창출할 것인가를 제안하고자 한다. 우선 현재의 지표상에 나타난 문제점들과 요인을 살펴보고, 시대상황과 미래예측의 틀 안에서 구체적인 선교비전과 전략이 어떠해야 할지를 나름대로 제시하고자 한다.
포럼의 주제 발표를 위해 본 글의 범위를 제한하자면, 본 글에서 제시하고 언급하는 모든 내용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비 신자들을 전도하는 것에 제한하여 쓴 것임을 미리 언급한다. 이유는 재림 교회는 복음을 듣고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개신교인들 까지 포함하여 전해야 할 특별한 기별과 사명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향후 또 다른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선교 110주년을 위기 속에 맞은 한국교회가 새로운 비전과 전략으로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과남은 교회로써의 특별한 사명과 역할을 다하게 되기를 바라며 본 포럼이 불씨의 역할을 하게 되기를 바란다.
한국 재림교회 위기의 본질
위에 명시된 도표를 통해 볼 수 있는 지표상 위기는 무엇이며, 그 본질적 문제는 무엇일까? 지난 십 수 년간의 숫자적 지표를 볼 때 외형적으로(안식일 평균 출석생, 수침자수) 한국 재림교회는 오랜 정체를 거쳐 최근에 이르러서는 쇠퇴의 곡선을 가파르게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회의 본질상 눈에 보이는 외형적 숫자가 우선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외형적 숫자는 그 과정과 본질의 열매라는 측면에서 볼 때 수적인 지표가 던져주는 메시지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한국 재림교회가 십 수 년 간 정체상태에 머물다가 최근 급격히 쇠퇴의 징조를 보이는 근본적 요인이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하고 분석해 볼 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한국 재림교회가 심각하게 선교의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출석 교인수가 제자리에 있다는 것은 교단적으로 전도해서 교인 수를 늘리는 일에 철저하게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아울러 전도해서 얻어지는 새 신자들을 잘 양육하여 정착시키는 일에도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 재림교회는 선교에 대한 동력을 잃었고, 잃어갈까? 외부적 요인은 논외로 하고 내부적 요인을 찾아보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가 그 동안의 연구와 고찰을 통해 발견한 두드러진 요인 몇 가지를 지적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영적 침체’와 ‘변화된 삶의 부재’이다.
영적으로 침체된 교회는 생명력이 없다. 바로 오늘 교회의 모습이다. 재림교회의 상당부분 문제의 근본 원인은 바로 ‘영적 침체’이다. 선교에 관련해서도 영적 침체가 선교에 대한 열정과 동력을 앗아간 주요한 요인가운데 하나임은 자명하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실제로 삶이 변화된 사람들의 이야기 자체가 복음전도의 커다란 힘이고 영향력인데 교회 안에 변화된 삶의 열매를 보기가 희귀하다. 이제 더 이상 입으로 외치는 복음은 힘이 없다. 탁월한 교리로 잘 포장된 복음도 영향력을 잃었다(*복음으로 포장된 교리여야 한다). 삶으로 전하는 복음이어야 한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복음을 듣는 경우, 복음 그 자체 보다는 복음을 전한 사람들이 보여준 삶에 영향을 받는다.
둘째, 예수와 그분의 하신 일, 즉 복음의 뜨거운 감격과 체험을 상실했다.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생생하게 느껴지며 체험되고, 이로 인한 감동과 감격이 있어야 하는데 성도들의 신앙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복음의 감격과 감동이 약해지고 관습과 제도, 특정한 라이프 스타일에 초점을 맞추는 신앙으로 전락한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신앙의 열정이 식어지고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교회의 제반 사역과 활동에서는 예수가 보이지 않고 이런 저런 이벤트성 행사와 관행적 프로그램중심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인들이 결국 자연적으로 선교에 대한 열정을 식어지게 하였다.
셋째, 시대에 적절히 대처하고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전도 방법과 양육, 훈련의 부족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전도는 개인들의 필요를 채워주며 그들의 관심과 감동을 얻은 후에 전도하는 관계중심의 전도가 적극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 재림교회는 전통적이고 일방적인 공중전도나, 합회나 연합회의 정책에 의한 수동적인 전도 방식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선교에 대한 흥미와 열정을 잃어가고 동시에 선교 동력 또한 약해지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표현되는 21세기는 관계중심의 생활전도가 효과적임이 이미 많은 연구와 사례를 통해 밝혀졌다. 전도를 위해 메시지(messege)도 중요하지만 메신저(messenger)가 매우 중요하게 대두되는 시대이다. 하지만 재림교회는 지역교회 현장에서 메신저, 즉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예수의 제자로 양육하고 훈련하여 전도인의 삶을 살게 하는 일에 총제적인 부실을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넷째, 조직과 시스템의 한계이다.
조직과 시스템이 선교의 강력한 동력과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이제는 역전되어 오히려 선교의 동력을 상당부분 잠식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재정의 흐름, 목회자의 인사이동제도, 합회와 연합회의 역할 등 상당부분 조직과 시스템 운용에 있어서 한계상황과 문제를 드러내면서 교회의 본질과 우선순위에 혼선이 오며 선교동력의 약화에 오히려 한 몫 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최근 몇 년 전부터 교단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 그 효과와 결과는 미미한 상황이라 판단된다. 이점에 있어서는 숫자가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요인을 제시할 수 있겠지만 선교동력의 상실이란 측면에서 볼 때 위에 제기된 문제가 주된 요인이라 사료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재림교회는 21세기의 한국적 상황 속에서 선교동력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인가? 올바른 해법을 찾기 위해서 21세기 변화하는 미래의 양상을 예측하고 인식하는 일이 우선되는 과제가 될 것이다.
한국 재림교회가 피해갈 수 없는 미래 키워드 11
목사이자 저명한 미래학자인 최윤식 박사는 그의 최근 저서 <2020-2040 한국교회 미래지도>에서 미래에 한국 교회가 피해갈 수 없는 미래 키워드 11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한국 재림교회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가 될 것이다. 그에 의하면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세가지 메가트렌드(megatrend)가 있다. 바로 ‘세계화’, ‘현대화’, ‘민주화’이다. 현대사회를 규정하는 이 세가지 키워드는 현대 교인들의 신앙 모습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여기서 파생되는 한국 재림교회가 피해갈 수 없는 미래 키워드 11가지는 다음과 같다.
미래 키워드 1. 신세대, 신문화, 신사고
급속한 세계화는 세계를 지구촌화 하면서 새로운 세대와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키고 있다. 이는 자연적으로 새로운 사고를 불러일으킨다. 새로운 세대는 열린 사고를 하며, 표현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기존 전통과 관습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비판을 주저하지 않는다. 한국 교회의 구성원들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이러한 신세대의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사고에 깊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래 키워드 2. 교배(交配)된 기독교
급속한 세계화와 이로 인한 세계융합의 영향으로 종교의 혼합도 가속화 되고 있다. 종교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으며, 개인의 관심과 미치는 유익에 따라 이런 저런 모양의 유사 종교들이 무분별하게 수용되고 있다. 이런 현상 속에서 교파간의 색깔이 희미해지며 교파간의 구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게 된다. 이에 대해 최윤식 박사는 “이런 현상이 계속된다면 10년 후 한국 기독교는 ‘교회 안의 다 종교 문화’라는 새로운 사탄의 공격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미래 키워드 3. 개인주의 신앙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특정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나 의무감이 약해지고 개인주의가 만연 하게 된다. 이런 흐름은 교회에도 깊숙이 파고들 것이다. 따라서 교회 이동을 쉽게 생각하게 되고 ‘교회가 맘에 들지 않고, 목사가 맘에 들지 않고 성도가 맘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교회를 바꿀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현상들에는 무너지는 교회관의 영향도 크다. 갈수록 교회 안에서 신학이 약화되다 보니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경적 교회관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제대로 된 교회관을 가지고 있지 못한 일부 목회자들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고 성도들은 교회보다 개인을 우선시 하며 교회를 위한 절대적 헌신, 희생, 충성의 요구가 먹혀들지 않는다.
미래 키워드 4. 신유목 교인(nomad Christian)
지금의 젊은 세대는 정보 통신과 과학기술의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받아 태어나면서부터 ‘이동성’의 능력을 부여 받았다. 살아온 곳에 대한 강한 집착대신 지금 어디가 나를 가장 편하게 해줄 수 있는가를 기본으로 삼는 세대이다. 따라서 이러한 세대의 교인들에게는 한 특정한 건물이 자기를 위한 영원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없다. 단지 자신이 속한 교회가 자기가 생각하기에 ‘지금’ 옳고 편안한 곳이 되기를 바란다.
자기의 기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쉽게 떠날 준비가 되어 있고, 떠나지 않더라도 교회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나 애착을 포기함으로써 교회를 위한 헌신과 봉사를 거부한다. 따라서 신유목민 교인에게 여기가 당신의 교회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는 먹을 풀이 떨어지면 냉정하게 다른 목초지를 향해 떠나버리는 유목민들에게 죽더라도 여기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미래 키워드 5. 3무(三無) 시대
21세기는 ‘무기력’, ‘무관심’, ‘무의미’의 3무(三無) 시대라고 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불안감에서 야기되는 것이다. 교인들도 교회의 미래에 대해서 불안감을 갖게 되면 자연스럽게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무관심해진다. 이러한 무관심은 교인들의 마음속에 염세주의적 태도를 불러일으킨다. 이것이 종말 신앙과 결합되면 기이한 형태의 기독교 신앙을 낳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시대일수록 분명하고 절대적인 가치관의 중요성이 커진다.
한편 여러 분야 사이의 경계선이 희미해지고 모호성과 불안이 증가하는 사회에서 중요한 생존 수단의 하나로 떠오르는 것은 ‘네트워킹 기술’이다. 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스(manuel Castells)는 <네트워크 사회의 등장>에서 ‘정보시대의 중요한 기능들과 사회적 과정들을 점점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조직되고 있다. 네트워크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사회적 형태를 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시대의 기업, 정부 개인을 보라. 독립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점점 잃어간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서로 더 많이 의존해야 하는 사회로 가고 있는 것이다. 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전도와 선교를 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와 다른 교회와 단체 간의 네트워킹을 해야 한다.
작은 교회는 지역의 다른 교회들과 협력해야 한다. 큰 교회 역시 주위의 작은 교회들과 협력해야 한다. 독불장군식의 행동은 효과적이지 않을뿐더러 자신을 고립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상호작용을 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 정보화 시대에 최고의 효율성과 성공을 얻는 방법이다.
미래 키워드 6. 얕은 영성과 다신(多神)주의
존 스토트 목사는 “오늘의 기독교 상황을 비정상적이고 비극적이고 불안한 패러독스를 지니고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교회가 크게 성장하고 있지만 ‘깊이 없는 영성’이 문제가 되고 있다. 한마디로 교회는 적절한 제자도가 결여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21세기 상대주의로 특징지어지는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전통적인 종교적 신앙체계를 그 밖의 다른 믿음 활동들로 보완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사람들이 덜 종교적이 되어서가 아니라, 심해지는 영적 공허감을 달래기 위해 더욱더 종교적이 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미래 키워드 7. 친절한 불가지론(Friendly Agnosticism)
복음이 약해지면서 그 틈을 타 ‘친절한 불가지론’이 한국 교회 안에서 큰 흐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트렌드 전문가 조지 오초아(George Ochoa)는 종교와 영성 트렌드에 대해 말하면서 앞으로 친절한 불가지론이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친절한 불가지론이란 “누구의 종교가 옳은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모든 사람의 생각을 다 인정해 주어야 한다”라고 친절히 말하는 사상이다. 이것은 지금 특정 종교를 가리지 않고 많은 현대인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한 종교 가치관이다. 이러한 주장은 편리한 신앙생활을 갈망하는 일부 교인들의 욕구를 교묘하게 충족시켜 주기 때문에 쉽게 종식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안식일 성수나 십일조, 신실한 예배참석, 교리에의 충성들은 개의치 않는다. 이들은 항상 신앙과 불신앙의 중간지대에 서있다. 흔히들 21세기 최대의 이단은 교회 안의 이단이라고 말한다. 사사 시대의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행태(삿 17:6; 21:25)가 재현되는 것이다.
미래 키워드 8. 코쿠닝 성도와 브랜드 교회
21세기 교회에는 ‘브랜드 교회’를 선호하는 교인과 ‘코쿠닝 성도’가 두드러지게 증가될 것이다. ‘코쿠닝’이라는 말은 미래학자 페이스 팝콤(Faith Popcom)이 사용하기 시작한 말이다. ‘코쿤’(cocoon)은 누에고치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이다. 현대인은 빠르게 변하고 불안정성이 커지는 현실로부터 도망하고 숨고 싶어 한다. 마치 누에가 고치 속에 숨어서 사는 모습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코쿠닝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현대 교인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열심히, 바쁘게 신앙생활 하는 것을 싫어한다. 헌신도 부담스러워 한다. 쉽게 신앙생활을 하려는 교인들이 많아진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려면 큰 교회 안에 숨는 것이 유리한 것이다. 바로 ‘코쿠닝’ 성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코쿠닝 성도의 증가는 자연히 교회가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하며 브랜드교회의 양산을 가져온다.
미래 키워드 9. 다운시프트(downshift) 신앙
현대인들은 인생의 참된 가치를 추구하며, 자신을 잃어버리게 하는 숨차고 정신없는 인생을 거부하는 성향으로 기울고 있다. 바로 ‘다운 시프트 바람’이다. ‘다운시프트’는 자동차의 기어를 고단에서 저단으로 바꿔 속도를 줄이는 것인데, 이처럼 인생의 속도를 줄이며 여유를 즐기는 삶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돈을 적게 벌더라도 자기를 잃어버릴 정도로 바쁘지 않고, 삶을 짓누르는 긴장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욕망이다.
이러한 다운시프트 바람이 교회에도 들어와 신앙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신앙을 편하게, 가볍게 하는 것이다. 본래 다운시프트 족은 미래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현재를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세속적 다운시프트에 물든 교인들과 목회자들은 더 나은 미래, 즉 하늘나라와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보다 지금 편안하고 육신과 감각적 즐거움을 위해 현재의 신앙을 위한 고난, 자기 절제와 인내를 포기한다.
미래 키워드 10. 트랜스찬(transtian)
현대인은 움직이는 소비자인 ‘트랜슈머’(transumer)로 진화하고 있다. 트랜슈머란 ‘이동’이라는 뜻의 접두어인 ‘trans’에 ‘소비자’라는 뜻의 ‘consumer’가 결합한 말이다. 그러면 움직이는 소비자, 트랜슈머는 왜 등장하게 되었을까? 빠르게 움직이고 변화하는 세상에서 단 1분의 자투리 시간도 잘 활용해 보자는 효율성 강조의 사고와 IT 기술의 발당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IT발달 속도에 비추어 보면 앞으로 더욱 크게 확산될 것이 틀림없다. 이러한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현대의 교인들의 신앙패턴 또한 변화가 일고 있다. 단 1분이라도 아끼려는 현대인의 특성상 치밀한 신앙관리를 추구하는 교인들은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하여 신앙생활의 체험과 배움을 넓혀 걸 것이다. 앞서가는 교회들은 이런 트랜스찬을 잡기 위해 첨단 IT 기술과 도구들, SNS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바야흐로 트랜스챤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미래 키워드 11. 감성신앙
흔히들 21세기를 “감성의 시대‘라고 이야기한다. 엘빈 토플러도 “21세기는 지식 못잖게 감성도 중시 될 것이다”라고 지적한바 있다. 따라서 감성을 중시하는 현대인들을 위하여 교회는 감성을 터치하는 사역을 개발해야 하는 도전을 받고 있다. 전도도 먼저 감동을 주어야 한다.
교회가 추구하는 진정한 감성 터치는 인위적인 감성 자극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은혜를 통한 감동,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을 실천함으로 자연스럽게 흘러 나가는 감동이 주가 되어야 한다.
21세기 한국 재림교회의 선교 패러다임과 방향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마 28:19-20)에 근거하여 선교는 교회의 존재 목적이자 사명이다. 화잇 선지자도 “이 지상의 그리스도 교회는 선교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교회증언 6권, 29)고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 복음 전파에 적신호가 켜졌다.
전반적으로 한국 교회는 정체 내지는 쇠퇴의 길로 들어섰으며, 전도의 과제가 점점 심각하게 여겨지고 있다. 재림교회 역시 예외가 아닌 상황이다. 전도에 투입되는 관심과 비용에 비해 결과가 빈약하고 전망 또한 밝지 않다. 대부분의 지역 교회와 성도들은 열매 없는 형식적인 전도의 강조와 실천에 지쳐있다. 현실적인 한계와 총체적인 전도의 위기가 온 것이다.
그렇다면 전도하기가 점점 힘들고 어려워지는 시대와 상황 속에서 재림교회는 마지막 시대에 특별한 사명을 가진 남은 교회로써 어떻게 하면 선교사명에 충실하며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까?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선교(전도)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이유는 현시대의 사람들은 전도에 대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적극적 관심과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세상이 주는 매력이 크고, 교회가 영향력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다원주의로 묘사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특징상 종교 다원주의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진리의 절대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에게 예수 믿어야 구원받는 다는 주장, 안식일을 성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잃고 오히려 편협한 기독교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한국 사회 속에 전반적으로 확산된 기독교와 그리스도인에 대한 반감의 확산은 전도를 더욱 어렵게 하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선교(전도)의 새로운 패러다임
선교(전도)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면 그 방향과 전략은 무엇인가 크게 세가지 방향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선교는 교회의 존재 목적이자 사명이고, 교회는 선교를 위해 조직된 것이다. 따라서 교회(교단)은 철저하게 ‘선교(지향)적 교회’가 되어야 한다. ‘선교적 교회’는 현대 교회의 큰 이슈이자 흐름이 되고 있는데, 선교적 교회에 대한 관심 이면에는 교회가 사회 속에서 건전한 영향력을 상실하고, 세상 속에서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성이 스며있다.
따라서 선교적 교회는 세상 속에서의 교회의 본질적 역할을 강조하고, 복음을 매개로 세상과 함께하며 소통하는 것을 지향한다.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관점에서 선교를 바라보고 세상으로 보냄 받은 교회,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선교적 삶에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지역사회를 정죄와 판단의 대상으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삶의 현장으로 이해한다.
즉, 선교적 교회의 핵심은, 단순한 가시적 교회의 성장 보다는 세상의 한복판에서 하나님 나라의 덕목과 삶을 증거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교회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제자도를 실천하도록 양육하고 지원하는 교회가 되자는 것이다.
당연한 것 같지만 매우 중요한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21세기 이러한 선교적 교회로의 패러다임 없이 단순히 교세 확장과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재림교회의 특정 교리를 받아들이게 함으로 재림교인을 만들려는 시도나, 위기 타개를 위해 도입되는 전략들 대부분이 프로그램이나 이벤트 성 행사를 지향하는 패러다임으로는 선교는 더욱 벽에 부딪칠 것이다.
교회에서 지향하는 선교의 패러다임이나 방법이 이렇다 보니 성도들의 ‘선교적 삶’도 일상에서 재림성도로서의 삶을 살기보다는 교회 건물 안에서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는 신앙생활을 더 경건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러나 영원한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이 있는 특별히 구별된 재림성도들은 일상의 어느 곳에서든(직장, 집, 길거리, 지하철 안 등) 선교적 삶을 살아야 할 사명이 있다.
선교적 교회는 교회의 존재성 또는 본질에 초점을 두는 반면, 과거의 낡은 패러다임에 속한 교회는 교회의 행위에 초점을 둔다. 선교적 교회는 선교를 존재의 표현으로 이해하지만 기존 교회는 선교를 행위로만 이해한다.
☞ 교회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사도적(선교적) 사명을 부여한 하나님의 백성 자체다. 건물도 아니고, 조직도 아니고, 프로그램도 아니다. 교회는 그 자체로 선교적이어야 한다. 선교적 교회는 선교행위(doing mission)가 아니라 교회자체가 선교가 되는 것(being mission)이다.
선교적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 자체가 선교적 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인격과 삶을 선교의 중요한 지평으로 생각하지만 과거의 낡은 패러다임에 속한 기존의 교회는 주로 선교사업과 프로그램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신자들의 인격과 삶을 선교적 지평에서 배제하는 경향을 보인다.
선교적 교회는 선교를 지리적으로 구분하지 않으며 지역사회를 선교의 핵심 영역의 하나로 여기지만 과거의 낡은 패러다임에 속한 기존의 교회는 선교를 주로 해외 선교로만 인식하기 때문에 지역사회를 향한 선교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 해외선교나 선교 사업에 집중하는 많은 교회들 가운데 지역사회에서는 외로운 섬과 같이 존재하는 교회가 많다. 지역주민들은 그 지역에 있는 교회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오히려 지역주민으로부터 반감을 사는 교회도 있다. 어떤 교회는 넓은 주차장이 있고 대부분의 시간이 텅 비어 있으면서도 주민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늘 잠가 놓는다. 종종 몰래 차를 댄 주민이 있으면 심한 말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이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지만, 그러한 교회들이 얼마나 선교에 무지한 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교회들은 대체로 선교뿐 아니라, 교회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선교적 교회는 복음과 구원의 통합성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복음을 통한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과거의 낡은 패러다임 안에 있는 교회는 단지 개인구원과 영혼 구원에만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에 교회가 세상에서 드러내야 할 복음의 공적 역할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 최근에 교회의 위상이 낮아지고 정체되고 쇠퇴하는 것은 복음의 사회적 영향력이 약화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교적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성장을 지향하는 반면 과거의 낡은 패러다임 안에 있는 교회는 개 교회(교단)의 이기적인 성장만을 추구한다.
☞ 종종 교회 자체가 선교의 주체와 목적이 되는 왜곡 현상이 우리의 현실에 나타난다. 교회가 회심성장(conversion growth)이 아닌 이동성장(transfer growth)을 추구하는 사례가 여기에 해당된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이동 성장은 이 주머니에서 저 주머니로 옮겨간 것에 불과한 것이다. 선교적 교회의 실천은 성육신적 방식을 취하는데 반해서 과거의 낡은 패러다임 안에 있는 교회의 실천은 권위주의적 방식을 취한다.
☞ 선교적 교회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선교에 모티브를 두기 때문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방식에서 선교 모델을 취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나님은 자신이 선교사가 되어 이 땅에 성육신 하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요 1:14). 그분은 사람들과 같이 되심으로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으며,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시고 복종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빌 2:6-8). 그분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비유에 나타난 소금(마 5:13)과 누룩(눅 13:21)의 역할이 이와 같다.
☞ 한편,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성육신적 사역의 모델은 두 가지 방식으로 실천되었다. 하나는 섬김의 방식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인간을 섬기기 위해서였다. 공생애 동안에도 다양한 사역으로 인간을 섬기셨으며 마침내 십자가를 통해 섬김의 완성을 보여주셨다. 권력을 추구하면서 서로 다투는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막 10:43-44)과 유월절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김으로 보여 주신 주님의 모범(요 13:3-17)은 섬김의 근본적인 자세를 분명하게 가르쳐 준다.
성육신적 사역의 또 다른 실천 방식은 약함을 통한 선교다. 선교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교회와 개인은 겸손할 수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통해서 보여주신 모습이 그러하셨듯이 선교적 교회는 자신의 약함 가운데 복음의 능력을 나타낸다. 권위적 태도가 아니라 종의 모습으로, 섬기는 자의 모습으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선교의 주체가 자신이라고 믿는 교회는 승리주의 관점에서 자신의 강한 능력을 과신하는 방식으로 행한다. 상대의 입장에서 배려하고 그들의 말에 경청하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베풀어 주는 시혜적 방식으로 복음을 전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다. 뚜렷한 정체성과 사명을 가지고 하나의 조직된 교단(denomination)보다는 운동(movement)으로 시작해 운동으로 마쳐야 하는 재림교회야 말로 그 어느 교파, 교회보다 더욱 ‘선교적 교회’가 되어야 한다.
‘선교적 교회’의 패러다임을 갖게 되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역할과 삶이 중요한 요소로 대두되며, 다음에 언급하는 평신도의 사역에로의 동역화와 동력화가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평신도의 동역화(partnership), 동력화(mobilization)
일찍이 평신도 사역의 중요성을 인식한 엘톤 트루블루드(Elton Trublood)는 “만약 보통의 교회가 모든 평신도들이-남자나 여자를 포함하여-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역자라는 개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매우 짧은 시간 안에 혁명과도 같은 결과를 경험할 것이다.” 라고 확신에 찬 언급을 했다.
오늘날 여러 교파의 성장하고 부흥하는 교회들을 살펴볼 때 그의 확신과 예측은 정확한 것이었다. 평신도를 체계적으로 양육하고 훈련시켜 사역에 ‘동역화’하고 ‘동력화’한 교회들은 한결 같이 괄목할만한 성장의 열매를 거두었다.
따라서 사실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평신도 사역은 재림교회의 귀중한 유산이다) 한국 재림교회에 긴급한 패러다임 전환이 요청되는 것은 ‘평신도를 구비(equipping)시키는 목회와 평신도들이 적극적으로 사역에 동참하는 교회로의 구조변환’이다. 이 일은 그저 하면 좋은 일이 아니라 꼭 해야만 하는 아주 긴급한 과제인 것이다(cf, 엡 4: 12~13).
이 일을 위해 각 교회는 체계적인 양육, 훈련 시스템과 실행 매뉴얼, 자료들을 마련하여 장기적인 안목과 기대감으로 적극 실천해 나가야 한다(* 도표 5는 연합회차원에서 재림교회의 표준으로 제시하는 양육 훈련 시스템의 개념도이다) 화잇 선지자의 지적처럼 재림교회는 ‘그리스도인 일꾼을 양성하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이래야 교회의 미래에 희망이 생기고 선교 사명을 적극적으로 이룰 수 있게 될 것이다. 결국 동역화, 동력화된 평신도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며 개인적으로 소명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관계 중심의 생활전도 구현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진리보다는 생활 속에서 감동받기를 원하고, 뭔가 의미 있는 관계를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관계중심의 생활전도는 매우 효과적인 성경적 전도 방법임이 틀림없다. 이 사실을 예수께서는 복음서에 기록된 그분의 삶을 통해 보여주셨다. 또한 화잇 선지자도 삶 속에서 타인의 필요를 채워주는 관계중심의 전도를 수차례 강조하였다.
결국 관계중심의 생활전도는 21세기 재림교회와 재림성도들의 전도의 전략과 방법으로 강조되고 적극 실천 되어야 한다. 여기에 미래교회의 선교적 희망이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맺는 말: 21세기 재림교회 선교의 전략적 과제
21세기 기독교는 포스트모던 문화의 강력한 사조로부터 큰 도전을 받고 있다. 남은 무리로서의 특별한 정체성, 사명을 가진 재림교회는 더더욱 그러하다. 절대 진리의 경시, 초월성에 대한 불신, 종교적 다원주의를 소망하며 다른 종교를 통해서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 불변의 진리보다는 역동적 변화의 선택, 상대주의,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경시, 대중문화와 상업주의에 입각한 소비자의 취향으로 방향을 맞추는 포스트모던 문화는 틀림없이 오늘날 선교를 가장 어렵게 하는 도전과 위협이다.
이러한 포스트모던의 강력한 도전 앞에 재림교회는 어떤 선교의 방향을 가지고, 예수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하는가?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으로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가?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는 비신자(unchurched people, unbeliever)에게 어떻게 선교적인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가? 다음의 네 가지 전략적 과제를 교회 앞에 제시한다.
건강한 영성(Healthy Spirituality)을 제공한다.
교회는 포스트모더니즘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영적인 것을 제공해야 하는 필요와 과제를 가지고 있다. 즉 건강한 영성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을 향한 선교의 가능성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포스트모던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 건강한 기독교의 영성을 삶의 중심에 놓을 수 있도록 연결하는 가교(架橋) 역할을 재림교회가 감당하면 그곳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공동체(True Community)를 만들어준다.
레너드 스윗은 그의 책 ‘postmodern pilgrim’에서 관계의 문제는 포스트모던 문화의 중심에 놓여있다고 정의했다(113쪽). 사회학자 다니엘 얀켈로비치의 말을 통해 레너드 스윗은 개인주의에 속해 있는 미국문화가 얼마나 공동체 안에서 관계를 원하고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미국인들은 사회 연구를 통해, 세상 어디에서나 넘치는 온정과 신실한 믿음이 있음을 알아냈다. 미국인들은 영적으로 중요한 삶의 질적인 향상, 더 깊은 유대감, 공동체적인 삶에 굶주려 있다.”
개인주의의 추구가 아닌, 혈연이나 지연 공동체가 아닌, 선택공동체의 연합을 갈망하는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포스트모던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주 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매우 공동체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갈망하는 공동체를 발견하고, 소속감을 원하며, 그러한 공동체를 찾고 추구한다. 따라서 재림교회 공동체는 복음의 선포를 위해 그들에게 자연스런 다리가 되어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관에서 살아가는 불신자들을 신앙공동체 안으로 초대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재림 교회는 앞으로 수직적인 구조보다는 네트워크라는 수평적 구조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뚜렷한 정체성과 사명을 간직하고 전통에 기반을 둔 교회와 교단의 틀을 뛰어넘어 그물망처럼 연결된 비신자들의 인간, 사회적 네트워크 속으로 적극적으로 들어가 연계되어야 한다. 이러한 비신자들이 속해있는 사회와 문화의 네트워크 속에서 재림교회 공동체가 관계를 맺고 공유하여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경험(Experience of Jesus Christ)를 갖게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깊이 있게 체험하고 감동을 갖게 해야 한다. 경험을 추구하는 포스트모던 사람들에 대해 레너드 스윗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현대인들은 삶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한다. 포스트모던인들은 삶을 경험하고 싶어한다. 특별히 스스로 경험하고 싶어한다. 포스트모던 인들은 경험할 수 없는 곳에서는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경험이 폭발하는 환경 속에서 살고 싶어한다. 그들은 정확한 정보를 원하지 않는다. 그 정보가 경험으로 포장되어 있기를 바란다. 그 경험은 극단적일수록 좋다” (33쪽)
레너드 스윗이 언급한 것처럼 포스트모던 사람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경험을 원한다. 재림교회가 삶의 중심에 놓여있는 고난과 아픔으로부터 평화와 기쁨을 가져오도록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접하게 하고 신앙의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세계관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재림교회가 복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의 진정한 만남을 갖게 하여 영적인 세계에 대한 경험적인 신앙과 영혼의 재발견을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참여적 교회(Participate Church)가 되어야 한다.
포스트모던 사람들은 상호의존적이며, 상호작용하는 기질 안에서 생각하고 살아간다. 그들은 관찰하는 자로서 참여자만큼이나 세상을 인지하고 이해하며 세상과 함께 상호작용한다. 더욱이 문화가 디지털화 될수록 더욱더 참여하는 문화가 된다. 멀티미디어가 전달하는 진짜 내용은 상호작용, 즉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다. 이러한 문화는 포스트모던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욱 활동적이고 상호적인 행동을 하도록 그들을 밀어내고 있다.
다시 말해 상호작용이란 포스트모던 사람들의 두뇌 속에 있는 하나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세계관은 상호작용성을 제공한다. 포스트모던 사람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서로 관계하는 것을 강조하며, 상호작용을 통하여 어떤 공동체에 참여한다. 사이버 공간안에서 서로의 관심, 취미 성향에 따라 동호회를 만들고, 블로그를 통하여 우리의 관계를 설정하고, 상대방의 의견에 댓글로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에 익숙한 포스트모던 사람들에게 교회는 어떻게 그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찰스 반 엔겐은 ‘Postmodernism- Possinile contributuins’에서 “미래의 교회는 기본적으로 그 자체가 관료적인 고직과 기구들보다 오히려 그룹과 개인들의 관계적인 네트워크에 의해서 구성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따라서 21세기 재림교회는 전통에만 의지해 일방통행의 조직과 기구를 가질 것이 아니라, 상당부분 관계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모든 성도들이 교회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참여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또한 비신자들의 그룹, 모임,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그들에게 호의적인 접촉점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전략적 과제를 충실히 이행하므로 재림교회와 재림성도들이 스가랴 8장 23절에 약속된 대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주님의 신실한 도구들이 되기를 바란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는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스가랴 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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