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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같은 어머니의 믿음, 자손대대 신앙유산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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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5.07.0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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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중앙교회 고 오판순 집사 1주기 추모예배에 모인 4대손의 감동 간증
전주중앙교회 고 오판순 집사의 자손 50여 명은 지난 6월 27일, 어머니의 1주기를 맞아 추모예배와 함께 특창을 통해 값진 신앙의 유산을 되새기는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그리운 어머니!
오늘 우리 어머니의 자손들이
당신을 기리며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새벽마다 새하얀 머리 곱게 쪽 지으시고,
두 무릎 가지런히 모아
어지러운 나라를 위해, 길 잃은 영혼을 위해
당신의 자손을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하시던 모습!

... ... ... ... ... ... ... .. ... ... ... ... ... ... ... ... ... ...

사랑합니다.
그립습니다.
저희 기억 속에 살아계신 내 어머니.
만날 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지난 6월 27일 안식일 오전, 전주중앙교회.

검정색 바지와 흰색 셔츠를 맞춰 입은 20여명의 성도가 단에 올라 조용히 악보를 폈다. 단정하고 곱게 빗어 넘긴 헤어스타일이 인상적인 앳된 청년부터 반백의 희끗한 머리가 중후함을 더한 노인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언뜻 봐도 찬양대는 아닌 게 확실했지만, 화음을 맞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경건하고 진지했다. 실력도 출중했다.  

이들은 지난해 작고한 고 오판순 집사의 자손. 어머니의 헌신적인 신앙과 고고한 삶을 곁에서 지켜본 8남매의 자녀가 모두 교회에 남아 숭고한 재림신앙을 지켜가고 있다. 어머니의 1주기를 맞아 추모예배를 위해 모인 이들은 마침 안식일을 맞아 생전 어머니가 출석하시던 전주중앙교회를 찾아 고인을 회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값진 신앙의 유산을 남겨주신 은덕에 감사하기 위해 찬양을 자청했다.

조카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른 사람만 25명. 또 그만큼의 자손들이 좌석에 앉아 어머니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교회의 절반을 이들 가족이 꽉 채울 만큼 다복했다. 하긴,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까지만 하더라도 증손자까지 4대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흐뭇한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던 가정이다.    

이들은 이날 ‘이 믿음 더욱 굳세라’와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두 곡을 준비했다. 생전의 어머니가 좋아하던 노래기도 하거니와, 어머니를 따라 신앙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다짐이 서려 있는 찬양이었다. 어쩌면 자신들의 생애가 우연이 아닌, 어머니의 보이지 않는 기도와 훌륭한 모본 덕분이었다는 감사의 마음을 담은 선곡이기도 했다.

사는 곳도 다르고, 분주한 일상에 밀려 충분하게 연습할 시간이 없었지만, 어머니와 할머니를 추모하며 부르는 노래인 만큼 서로 마음을 모아 정성을 다해 호흡을 맞췄다. ‘여기에 모인 우리 주의 은총 받은 자여라’라는 노랫말이 마치 부모님이 이들에게 물려주신 귀한 신앙의 유산의 대신 표현하는 것 같아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찬양 중간, 넷째 딸 윤영희 씨가 어머니에게 띄우는 짧은 편지를 낭독했다. 오랫동안 개신교회에 다니다 몇 해 전, 막냇동생 윤영미 집사(화정교회)의 오랜 기도와 성경공부로 진리기별을 깨달은 그는 요즘 셋째언니 윤숙자 집사 부부와 함께 제주 토스카나호텔에 근무하며 신서귀포교회에 열심히 출석 중이다.

“어머니! 어머니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지 벌써 1년이 흘렀네요. 잠자듯, 꿈꾸듯, 아무 고통 표현 않고 자손들이 부르는 기도와 찬송 속에 소리 없이 아름답게 눈 감으신 우리 어머니. ... ... 저희는 어머니의 자녀로 태어남을 참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어머니의 신앙 따라 예쁘게 살다가 주님 오시는 그날 다시 만나요. 그때도 내 어머니로, 우리 엄마의 사랑스런 자녀로 손자 손녀로 만나길 기도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고 자란 막내 윤영미 집사는 곡 중 솔로로 감동의 깊이를 더했다. 그야말로 하늘 찬양대를 연상케 했다. 머잖아 천국 유리바닷가에서 어머니를 다시 만나  온 가족이 예수님 앞에서 이 모습 그대로 화음을 맞춰 찬양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  

앞자리에 앉아 물끄러미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한 노(老)집사는 잠시 눈을 들어 허공을 바라봤다. 몇몇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어떤 유혹과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고, 꼿꼿하게 재림신앙을 지켜가던 생전의 오판순 집사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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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어머니 때부터 개신교회에 다닐 만큼 뿌리 깊은 기독교 가정이었던 고인이 재림기별을 깨달은 건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군 복무 중이던 둘째아들이 안식일 진리를 발견한 후 셋째아들을 통해 재림교회를 알게 됐다. 하지만 침례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금쪽같은 셋째아들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하늘이 무너질 듯 했지만, 오 집사는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 오히려 그날부터 자신과 가족의 신앙을 다잡기 시작했다. 아들이 알려주고 떠난 소중한 복음을 허투루 할 수 없었다. 아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온 가족이 말씀 안에서 신앙생활을 잘해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확신이 더 커졌다.

세천사의 기별을 깨달은 오 집사는 온 가족을 재림교회로 인도했다. 3남5녀의 자녀는 물론, 깊은 유교사상에 젖어 절대 교회에는 가지 않을 것 같던 남편 윤상천 선생 역시 아내를 따라 재림교회에 발을 디뎠다. 이렇듯 셋째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은 씻을 수 없는 슬픔이었지만, 모든 가족을 믿음으로 엮은 한 알의 씨앗이 되었다.

그의 삶은 화려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주변에 늘 잔잔한 등불처럼 빛났다. 오랜 세월 고인과 인연을 맺은 김진홍 은퇴목사는 “교회에 오시면 항상 맨 앞줄에 두 내외가 앉아 말씀을 듣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과묵하면서도 언제나 남을 먼저 배려하고 희생하던 전형적인 양반가의 모습이었다. 노년에는 주위 친구들을 전도하기 위해 애쓰던 존경스런 분이었다. 늘 한 그루 소나무처럼, 한 마리 학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드러낸 분”이라고 회상했다.

화정교회의 한 성도 역시 “가끔 막내딸의 집에 오시면 늘 정갈하게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교회에 오셔서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기도하셨다. 설교 시간에도 또렷한 눈망울로 목사님을 응시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면서 “한번은 교과공부 시간에 지도하시던 장로님의 질문에 정답을 넘어 오히려 부연설명을 하시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귀띔했다.
    
가족들이 기억하는 어머니의 모습도 한결 같다. 매일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쪽 지은 머리로 성경을 보시고, 낮은 목소리로 기도했다. 자녀들은 늘 귓가에 울리는 어머니의 기도소리에 잠에서 깨곤 했다. 하지만 기도는 자기 자신이나 재물, 가족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반쪽으로 갈라져 아픈 상흔을 지닌 국가와 민족, 길 잃고 방황하는 백성과 영혼을 위한 간구가 우선이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이나 가족의 문제는 어머니의 기도에서는 늘 뒷전이었다. 그만큼 이타적인 마음을 가진 신앙인이었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죽을 때 눈물을 흘리는 대신, 옆에서 찬미를 불러 달라던 평소 유지대로 그는 자손들의 기도와 찬미소리를 들으며, 재림의 그날 다시 만나자는 소망을 가슴에 품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런 외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란 재림청년이 바로 한류스타 김준수(시아준수) 씨다. 그는 언젠가 한국연합회 미디어센터와의 인터뷰에서 “내게 신앙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은 외할머니와 어머니”라며 “내가 기억하는 외할머니의 모습은 언제나 성경을 보시고, 기도하시는 모습이다. 말씀을 하셔도 늘 성경의 인물을 빗대 설명하고는 하셨다”고 추억을 떠올렸다.

김준수 씨는 “데뷔를 앞두고 남들보다 오랜 지독한 변성기 때문에 가수의 꿈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고 괴로워할 때, 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함께 옥상에서 울면서 기도해 주었던 어머니의 신앙이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원동력”이라며 “아마 어머니도 그런 외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라셨기에 가장 힘든 순간, 예수님을 찾지 않으셨을까 생각한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 윤영미 집사는 “어려서부터 외할머니를 존경하던 아이들이 그분의 모범적인 신앙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재림신앙을 받아들였다. 성경학교, 개척대, 안식일학교 등 교회생활 전반에 외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유명인이 되었지만 지금도 자신이 재림신자인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어머니의 삶은 우리 자손에게 신앙의 지표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날 안식일 전주중앙교회의 특창은 이처럼 한 사람이 뿌린 신앙의 씨앗이 어떻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히는지 보여주는 뜻 깊은 장면이었다. 생전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에 수십 명의 자손들이 모여 고인의 삶을 추억하며, 우리가 가진 신앙유산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생각하게 하는 의미 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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