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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담 전문] 민족의 역사와 함께한 한국삼육 1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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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 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6.10.2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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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화 동문회장 “혼란한 사회를 깨끗케 하는 책임 부여받아”
정성화 한국삼육중고 동문회장이 모교의 개교 110주년 기념식에서 회고담을 전하고 있다.
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 그리고 사랑하는 동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2009년 10월, 개교 103주년 기념 체육대회 당시 ‘한국삼육역사 바로찾기운동’을 주창했던 제가,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오늘 자랑스러운 한국삼육 개교 110주년 기념식에서 회고담을 말씀드리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우리 한국삼육중고등학교는 1906년 10월 10일 순안 유지인 김두형 선생과 부총리를 역임한 임창렬 지사의 조부이자 재림교인 임기반 선생 등이 사숙을 운영하였는데, 이날이 우리의 원뿌리인 의명학교의 개교일이 되었습니다.

이후 1907년 9월 22일 평안남도 관찰사로부터 지금은 순안국제 비행장이 들어선 석박산기슭의 5만5000평의 땅과 건물을 무상으로 기증받아 기와집 일곱 칸을 짓고, 11명의 학생으로 보충과 4개년과와 고등학교 3개년 과정으로 재림교단의 교역자 양성을 위한 현대적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이때 남학생은 1905년 11월 17일 부산땅을 밟은 스미스 목사가, 여학생은 여선교사인 샤펜벅 선생이 담당. 지도했습니다. 당시 순안의명학교 졸업생 명부가, 지금도 우리 한국삼육고등학교 교무실에 잘 보관돼 있습니다.

그 결과로 부인과 장인이 재림교인이었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전 생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한 의명학교는 도산의 동서이자 주치의였던 김창세 박사를 배출하게 됩니다. 이 사실은 제가 지난 8월 15일 미주 광복절 기념식에 1919년 탑골공원에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여 이 나라 독립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한 애국지사 정재용 선생의 친손자 자격으로 참석해, 도산의 막내아들인 랠프 안 선생으로부터 확인한 바 있습니다.

한국인 의사가 필요했던 당시 재림교회는 의명학교 교사였던 김창세 박사를 1916년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하게 한 후 1918년까지 교단이 운영하던 순안병원에 근무하게 합니다. 이후 상해에 있는 재림교회 운영병원인 홍십자병원에 선교사로 파견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합니다 .

이후 김창세 박사는 동서인 도산이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1925년 존스홉킨스대학원에서 한국인 최초로 보건한박사가 되어 세브란스 의전에 교수로 부임합니다.

김창세 박사가 상해 홍십자병원 근무 당시 춘원 이광수, 시인 피천득, 시인 노천명 등에게 재림기별을 전했고,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몰래 입국할 때 재림교인 미국인 목사, 의사들이 관계하였음과 의명학교 출신(3회, 4회) 독립운동가인 최경신, 허연, 강봉호, 이면식, 유영순 선생 등 선배들이 흥사단원으로 활동하며 상해 임시정부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음을 기록으로 알 수 있습니다.

(친일 변절 이전의)이광수는 <시조> 창간 30주년 기념호에 각계 명사들이 보낸 축사 중 ‘안식교회와 나’라는 제목의 글에서 자신을 “안식일교회를 존경하는 사람이며, 그 생활의 진실하고 청쟁함을 사랑하며 안창호 선생의 동서 김창세 박사를 통해 안식일교를 알게 되었고 매주 한 차례식 ‘캉거’라는 이름의 교수에게 성경을 공부했으며, 안식교회의 진실하고 청정한 생활의 모범은 교파의 여타를 물론하고 인류를 구원하는 성업”이라고 칭송합니다.

이광수는 피천득에게 상하이에서 활동하던 안창호를 만나보도록 주선하는 등 안창호 선생과 적극적인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1923년 <동아일보>에 장편을 연재하나, 안창호를 모델로 한 내용이 문제가 되면서 총독부에 의해 중단 조치되기도 했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국민계몽과 조국의 독립에 헌신한 선각자였으며 한국 재림교회의 기초를 놓은 근당 임기반과 동향 친척간이자 후원자였습니다. 도산은 집이 가난해 한때 임기반의 집에서 숙식했습니다. 도산과 근당은 독립협회 활동, 하와이에서의 민족계몽운동, 신민회조직, 국채보상운동, 조선독립청년단 조직과 독립자금 모금활동 등을 함께 펼쳤습니다.

근당 임기반은 재림교인인 이석관의 장녀 이혜란과 도산 안창호의 백년가약을 성사 시켰습니다. 도산의 사상에는 재림교회의 사상적 편린이 엿보입니다. 근당이 설립한 의명학교에서 전통적으로 견지해 온 교육이념인 지.덕.체의 삼육이념을 흥사단을 조직할 때 민족기풍을 혁신하고, 건전인격을 창출할 이념으로 삼은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도산의 직업교육 강조도 의명학교의 실업교육과정과 유사합니다. 주요한이 편저한 <안도산전집> 485쪽에는 도산 선생이 옥사하기 전 “나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소. 순안안식교의 제품인 포도즙은 진정품인데 안국동 남계양행에서 파니 용기까지 가져오면 한번 시음 하겠소, 라고” 말함으로써 도산과 재림교회의 인연이 임종까지 함께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의명학교는 신사참배를 거부함으로 일제 말기에는 폐교되는 쓰라림과 해방의 기쁨 그리고 6.25 동란의 소용돌이를 민족의 역사와 함께 겪었습니다.

한국삼육의 동문들은 지금도 세계 각처에서 의사로, 교수로, 학자로, 목회자로 수고하고 있습니다. 미국 심장내과계에서 인공stent 세계적 특허를 갖고 있는 장근청 박사, 미국의 저명 이비인후과 의사 정태건 박사, 스텐포드대 연구의사 정영태 박사, 2013년 인공지능 분야 세계 10대 연구자로 선정된 미시간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이홍락 박사, 하버드치대 교수 정찬욱 박사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삼육의 얼을 열심히 실천하고 있는 동문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듯 지난 110년 동안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많은 독립운동가 선배와 세계적인 선배를 많이 배출시켜 주셨고, 고난과 발전의 역사 속에서 민족과 더불어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우리 동문들은 이러한 역사의 유산을 오늘에 되살려 요즈음 이 혼란한 사회를 깨끗케 하는 책임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그 어느 때보다 국제화되고 다양화된 이 시대에 발맞춰 성경말씀과 예언의신을 믿음의 근간으로 삼아 개인의 구원문제는 확고히 하되, 우리 주변의 이웃에게 재림교인의 아름다운 풍모와 깨끗한 생활태도에서 나오는 향기를 자연스럽게 전할 수 있는 귀한 한국삼육의 가족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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