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파송한 한국인 1000명선교사 ‘127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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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6.06.0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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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8명 기점으로 매년 감소추세 ... 올 지원자는 7명
2012년 38명(40기 13명 / 41기 25명)이었던 한국인 지원자는 이듬해 29명(42기 8명 / 43기 21명)으로 하락했고, 2014년에는 22명(44기 11명 / 45기 11명)으로 감소했다. 2015년 3기말에는 25명(46기 10명 / 47기 15명)으로 약간 상승했다.
올해는 지원자 감소현상이 특히 두드러졌다. 48기 모집 1차 기간이었던 지난 3월에는 한 달 동안 신청자가 전무했다.
한국연합회 청소년부는 모집기간을 수정해 다시 공고했지만, 4월 28일까지 지원자는 단 3명에 그쳤다. 결국 모집기간을 연장했지만, 이달 3일 현재 7명에 머무르고 있다. 포스터 발송, 인터넷 광고 등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계속 홍보활동을 했지만, 좀처럼 예년 수치를 회복하지 못하는 것.
1000명선교사운동이 시작된 1992년 이후 모집인원이 한 자리 수로 떨어진 것은 2013년 42기(6명)와 이번 48기뿐이다. 그동안 매년 꾸준히 50명가량 지원했지만, 2010년 38명을 기점으로 점차 감소추세에 있다.
■ ‘금세기 최대의 도전’ 1000명선교사운동은?
‘금세기 최고의 도전’이라 불리는 1000명선교사운동은 1991년 11월 7일 당시 아시아태평양지회 신학대학원장이었던 이재룡 목사(현 북아태지회장)에 의해 창안됐다. 아태지회대학원 이사회에 처음 제출돼 승인된 후 4일 뒤인 11일 아태지회 연례회의에 13개 연합회 대표들의 만장일치로 결의됐다.
1000명선교사운동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91년 12월 14일 당시 서울위생병원교회에서 열린 전국장로협의회에서다. 이때 1000명선교사운동에 대해 들은 대표자들은 12만5000달러를 헌금하기로 서약했다. 이듬해인 1992년 2월 한국연합회 확대 행정위원회에서 1000명선교사운동을 후원하기로 결의해 지원하기 시작했다.
지회는 같은 해 12월 23일 아태지회대학원 캠퍼스에 조금 떨어진 곳에 약 3만9669㎡(약 1만2000평)의 부지를 구입해 1000명선교사훈련원 조성을 위한 걸음을 떼었으며, 이듬해 1월 7일, 4개의 대형 군용 천막을 세우는 것으로 선교사 훈련의 요람이 만들어졌다. 그 다음 주인 1월 12일부터 역사적인 첫 선교사 훈련이 시작됐다.
이후 2월 28일 선교사 1기생 60명에 대한 선교사 훈련 수료식이 진행됐고, 3월 5일과 15일 각각의 선교지로 파송됐다. 이어 매년 두 번씩 선교사들을 모집하고 훈련하고 파송해 현재 48기에 이르렀다. 현재 본부인 필리핀 외에도 인도네시아, 인도, 페루 등 세계 곳곳에 분원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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