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 델마 박 여사 ... 포장지에서 본 낱말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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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 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7.05.22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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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안식일이 맞다” 선교사 파송 전부터 자체 연구해 성수
그곳에서 유카탄으로 이동해 한 농장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카페트를 짜는데 필요한 에네켄(용설란과의 식물)이라는 작물을 재배하는 농장이었습니다.
한인들은 매우 열심히 일했습니다. 원주민은 하루에 50묶음 정도를 수확했지만, 한국인은 200묶음을 수확할 만큼 부지런했습니다. 수익금의 25%는 가정을 부양하는데 썼습니다. 나머지 75%는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보냈습니다.
당시 이들의 계획은 3년 동안 멕시코에서 일하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조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사랑하는 가족은 돈이 없어 이들을 데려올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다시는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들은 멕시코인과 결혼했습니다. 저와 루이 목사님은 그 후손입니다.
멕시코 한인 이민자 1세대는 주로 감리교와 침례교, 불교신자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과 루이 목사님 가족은 불교신자였습니다. 한인들은 종교생활을 위해 종종 집회를 열었습니다.
나의 증조할아버지는 멕시코시티에서 과일과 채소 파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과일 포장지에 ‘안식일’이라는 내용이 적힌 것을 발견했습니다. 증조할아버지는 그 종이를 갖고, 당시 한인사회 회장에게 찾아갔습니다. 그것을 읽은 회장은 안식일에 대한 여러 성경구절이 나오는 연설문을 준비했습니다.
그는 한인들이 모인 곳에서 그 연설문을 읽고, “당신들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과연 안식일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한인회장은 그 자리에서 “이제부터는 토요일에 집회를 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들은 안식일을 준수하면서 안식일에 대해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서 정식으로 멕시코에 선교사를 파송하기 전의 일입니다.
1910년 돈 파크 김이 파리가스 목사님에게 처음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유카탄반도에는 재림교회가 문을 열었습니다. 한인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해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 기별을 전하면 사람들이 돌팔매질을 하며 쫒아내는 일도 빈번했습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급히 몸을 피해야 하는 일도 잦았습니다.
어떤 이는 도기를 수선하는 직업을 갖고 시내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들이 스페인어로 할 수 있는 말이라곤 “도기 수선합니다”라는 말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 기별을 깨달은 후로는 이 말 후에 “곧 예수님께서 오시니 준비합시다”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멕시코로 떠났던 많은 사람이 다시는 본국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육신의 고향이 아닌, 하늘본향에 갈 꿈을 꾸며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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