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처음으로 할머니 나라 찾은 ‘애니깽’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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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7.05.22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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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광고에 속아 팔려간 멕시코 이민 한인 1세대의 애환
루이 김 목사와 델마 박 여사는 1905년 이민을 떠난 최초의 한인 멕시코이민자의 3대 후손. 루이 김 목사는 북멕시코연합회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13일 삼육대학교회 안식일학교에 초대된 이들은 “저의 핏줄인 한국에서 여러분과 만나게 되어 매우 반갑다. 한국에 올 수 있었던 것을 큰 특권으로 생각한다. 저의 ‘뿌리’가 이곳에 있다는 걸 실감했다”고 인사했다.
이들은 척박한 땅에서 모진 삶을 개척해간 선조들의 역사와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를 간증했다.
우연히 과일포장지에서 발견한 ‘안식일’이라는 단어를 보고, 성경을 연구해 재림신자가 된 멕시코 한인들의 삶은 하나님의 인도와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의미 깊은 시간이었다. 더욱이 그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멕시코를 한층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복음이 담긴 인쇄물을 가을낙엽처럼 뿌려야 한다는 출판전도의 중요성이 체감되기도 했다.
한국인의 해외 이민 역사는 19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후반 계속되던 가뭄과 열강의 야욕에 따른 국내 정치의 혼란, 국제 설탕 수요의 대폭적인 증가 그리고 중국인과 일본인의 이주억제정책 등 국내외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 해 1월 13일 게릭호를 타고, 102명이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한 게 처음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사탕수수밭과 파인애플농장에서 일했다.
멕시코에 한인의 발걸음이 닿은 건 그로부터 2년 후의 일이다.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해다. 1905년 4월 4일 인천 제물포항에서 출발해 45일간의 긴 항해 끝에 어린이를 포함한 1033명이 유카탄 주의 부로그래스항에 도착했다. 당시는 파나마 운하가 없을 때라 여정은 더욱 길고 힘들었다.
불안과 설움을 안고 떠난 이민생활은 모질고 가혹했다. 불법노동이민 광고에 속은 이들은 짐짝처럼 하역돼 기차를 타고 메리다에 도착했다. 그리고 25곳의 농장으로 ‘팔려’ 나갔다. 식량, 옷, 생필품 등을 먼저 공급받은 후, 그 대가를 갚는 조건으로 4년 계약기간의 부채노예제도 희생양이 된 것이다.
옥토와 신천지를 꿈꾸던 그들 앞에 놓인 건 처참한 삶이었다. 사막의 황색모래바람처럼 척박하고 메말랐다. 현지 교과서에 한인 이민자를 노예로 삼았다는 기술이 있을 정도로 비참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노동환경은 생각보다 훨씬 열악했다. 채찍을 맞아가며 밤낮으로 일해도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다.
이들은 에네켄(용설란과의 식물) 농장에서 노예취급을 받으며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일명 ‘애니깽’이라 불리는 이 선인장은 가시에 찔리면 살이 썩어 들어갈 만큼 고약했다. 멕시코 사람들은 에네켄으로 섬유질도 뽑고 술도 빚고 염료도 만들었다. 조선인 이민자들은 가마솥같이 뜨겁고 전갈이 우글거리는 농장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용설란 잎을 땄다. 온몸이 가시에 찔려 성한 날이 없었다. 견디다 못해 도망가다 잡히면 물에 적신 채찍에 맞거나 심지어 발목이 잘리는 일도 일어났다.
하지만 4년간의 노동 계약이 끝났을 땐, 자립할 능력이 되지 못했다. 꿈에 그리던 조국은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더 이상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걸 알게 된 이들은 원주민인 인디오에 동화돼 정착하거나 쿠바로 재이민을 떠났다.
그러나 그러한 고생 속에서도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일제강점기 동안 이들은 임시정부에 자금을 지원했다. 멕시코 교포 300명은 독립군에 합류하려고 군사훈련까지 받았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1년간 같이 지내기도 했고, 두 번이나 방문해 자금을 받아갔다. 희망을 볼 수 없을 것만 같던 척박한 삶을 살면서도 이들은 2세들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심어주고, 조국의 아픔을 함께 나눴다.
112년 전, 최초의 한인 멕시코이민자들이 발길을 디뎠던 유카탄 주 메리다 시에는 한인 이주 100주년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2011년 현재 약 1만2000여명의 한국인 이민자가 살고 있으며, 종교는 주로 기독교와 대승불교로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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