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삭풍’ 한지만 군의 세 가지 꿈 그리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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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8.04.1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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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투쟁이 버겁고 지난해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이유
또한 원고는 다른 대학에서는 특정 종교 교인들에게 추가시험을 허용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 대학의 사례와 이 대학의 사례를 같다고 볼 수 없습니다. 학교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대학에서 추가시험을 허용했다고 해서 반드시 피고(K대 의학전문대학원)가 원고에게 추가시험을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건 아닙니다.
따라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고,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하도록 합니다. 판결 결과에 불복이 있으면 2주일 이내에 항소하십시오”
마음 졸이며 끌어오던 재판이 끝나는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법정의 문을 나서는 그의 어깨가 축 처졌다. 발걸음에 힘이 없었다.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비쳤다. 부모님을 비롯한 예닐곱 명의 일행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한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일말의 기대감이 허물어지고, 쓰나미처럼 밀려든 실망감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심경을 묻자 나지막이 “재판부가 학교의 주장을 좀 더 들어준 것 같다”며 말끝을 흐렸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현직 약사다. 굳이 이런 ‘고초’를 겪지 않아도 된다. 누구 말마따나 자기 직업만으로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그럼에도 그가 의지를 굽히지 않는 까닭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가고 싶은 길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7일, 식사를 같이하는 자리에서 그에게 대체 그 ‘꿈’이 무어냐고 물은 적이 있다. 무엇 때문에 굳이 이런 어려움을 겪으며 소송을 하느냐고 질문했다. 그의 입가에서 수줍은 미소가 새어나왔다.
“거창한 건 아니에요. 여전히 고민하고 있지만, 세계보건기구 같은 국제기구에서 전문가로 일하고 싶어요. 아프리카나 제3세계 어린이를 위해 봉사하고, 풍토병이나 감염병 예방치료를 위해 기여하는 그리스도인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늦은 나이에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했다. 낮엔 약국에서 일하고, 저녁엔 책과 씨름하며 그 꿈을 향해 도전했다. 성적도 우수했다. 안식일이 아닌, 평일에 치른 시험은 모두 뛰어난 점수로 과목을 이수했다.
그에겐 다른 꿈이 있다. 후배들이 ‘안식일 시험’ 걱정 없이 공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다.
‘내가 여기에서 무너지면 다음에 오는 후배들은 어쩌면 영영 토요 시험을 거부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여기서 걸음을 멈추면 안식일을 성수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길이 막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비록 본인이 손해보고, 희생하고, 어렵더라도 묵묵히 ‘자기 십자가’를 지고 걸어간다.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는 사실만으로 부담을 넘어 낙인이 될 수 있지만, 후배들에게 온전한 안식일 성수의 길을 열어주고 싶은 마음에 이 투쟁을 중도에 멈출 수 없다.
그에겐 꿈이 있다. 한국 사회의 종교자유가 신장하는 것이다. 사실 이 소송도 ‘왜 우리 재림교인은 종교의 자유를 인정받으며 자유롭게 공부할 수 없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대한민국은 왜 아직도 자기 신앙을 유지하면서 학업의 기회를 보장받고,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우리 사회가 소수자에 대해 이 정도 배려와 성숙도도 갖추지 못한 것인지 아쉬웠다.
하지만 홀로 걷는 이 길이 생각보다 너무 지난하다. 때때로 버겁게 느껴질 만큼 외롭고 쓸쓸하다.
현재 클래스 출석부에 그의 이름은 없다. ‘유령인’ 취급을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수업에 참여한다. ‘왜 학적도 없는 사람이 강의실에 들어 오냐’는 따가운 눈총과 핀잔을 견뎌내야 한다. 나중에 유급 관련 문제가 어떻게 터져 나올지 몰라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셀카를 찍어 ‘증거’를 남겨둔다. 그럼에도 공부는 했지만, 시험에 응시할 자격은 없는 학생이다.
이런 설움을 가슴으로 삭이며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패소 소식이 알려지며, 그동안 그를 탐탁지 않게 여겼던 사람들이 조소하며 뒤통수에 대고 수근 댈지도 모를 일이다. 교수들의 눈초리는 더 따갑고 차가워질 것이다. 학교는 절차적 위법사항을 보충해 그의 유급을 더욱 옥죄올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항소(抗訴)의 길을 가려 한다. 이 ‘봄의 삭풍’을 오롯이 혼자 견뎌내려 한다. 믿음의 동아줄을 붙잡고, 불확실을 감내하려 한다. 그것은 이제 사명이 되었다. 안개 같은 세상이지만, 그 속에서 꿈은 더 확실해졌고, 길은 더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꽤 많은 장면에 침울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죄인처럼. 혹시, 그가 만약 이 기사를 본다면 “고개 숙이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단지 아직 가야할 길이 좀 많이 남았음을 확인했을 뿐이라고. 이제 겨우 내딘 첫 걸음이 잠시 꺾였을 뿐이라고. 그러니 고개 숙이지 말라고.
한지만 군 소송 후원계좌
■ 702449-02-665997 우체국(예금주 최기웅 / 영남합회 종교자유부장)
■ 355-0051-0389-13 농협(예금주 종교자유와 기회평등을 위한 모임 / 김윤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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