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특집 기고] 김영화 사모의 ‘자녀의 감정 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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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 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8.05.08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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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된 행동에도 무조건 공감해야 하나 ... “감정 자체에는 옳고 그름 없어”
‘자녀의 감정 돌봄’을 살펴본 김영화 사모는 현재 삼육대학교 대학원 상담심리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이수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큰딸과 오손도손 어릴 적 이야기를 나눌 때의 일이다. 갑자기 아이가 “그때는 엄마가 엄마 같지 않았어”라고 말해 적잖이 당황했다.
“엄마가 엄마 같지 않았다고? 그럼 머 같았어?”
“사모 같았어”
아이의 솔직한 감정표현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이전 같으면 ‘엄마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어떻게 이런 양심 없는 소릴 할 수 있냐’며 한바탕 훈계를 늘어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어느 정도 내공이 생겨서 태연스레 넘기며 “그랬구나, 엄마한테 많이 답답하고 서운했겠다~”하고 받아줬다. 그러면서 “그럼 지금 엄마한테 점수를 준다면 몇 점 줄거야?” 라고 물었다. 아이가 곧 “응~ 18점이야”라고 답한다.
“그래? 10점 만점에 18점이나 줘? 우리 딸 맘씨 후하다~” 했더니 딸이 말하길 “아니, 만점이 100점이야” 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우리 딸이 아직도 뭐가 불만일까? 엄마가 무엇을 더 잘해줄까?”라고 응수했다.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했더니 결국 아이가 “아까는 농담이고, 18점 곱하기 10하면 돼. 지금은 좋은 엄마인 것 같아”라고 급마무리를 해줘서 깔깔 웃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아이가 어릴 적에는 순종적이고 교회에 가면 어린친구들을 잘 챙기고 돌봐주는데다 공부도 곧잘 해 주위로부터 ‘어쩜 그렇게 아이를 야무지게 잘 키우느냐’는 칭찬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정말 잘 키운 줄 알고 으쓱했었다. 그런데 그 무지개 같던 딸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점차 낯선 사람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등교할 시간이면 배가 아프다고 한동안 이부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가 하면, 하루 종일 어두컴컴한 방에 누워 핸드폰만 만지다가, 늦은 밤이 되면 엄마를 붙들고 “엄마 아빠가 싫어” “죽어버리고 싶어” 이런 비수 같은 말을 하며 눈물 콧물이 범벅되도록 우는 것이었다.
학교 가기를 거부하는 날이 길어지자 한 유명 종합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았지만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고, 아픈 이유는 모르겠다는 진단만 돌아왔다. 아이와 같이 무너져 버릴 것만 같은 날들이 계속되자 마음속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거지? 아이의 독립심을 키운다고 어른처럼 대한 것이 잘못인가? 신앙심을 키워주려고 안식일을 칼 같이 지키게 한 것이 잘못인가? 사회에 나가 눈칫밥 먹지 말라고 엄하게 훈육한 것이 잘못인가?’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 그때부터 심리학 서적들을 밑줄을 치면서 열심히 읽었고, 기회가 날 때마다 상담심리학과 교수님들과 동료들한테 자문을 구했다. 그러면서 나의 진실한 모습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이를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규칙 위주로 키웠다는 걸 뒤늦게 발견했다.
아이면 실수하는 것이 당연한데, 실수할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꾸짖고 지적하면서 정작 놀란 마음은 위로해주지 못했었다. 친구들과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고 종알거리면 아이의 감정보다는 늘 양보하라고, 친구들하고 잘 지내라고 권고만 했다. 교회에 가면 순종적인 모습만 보이라고 강요했다. 아이를 더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겠다는 미명하에 그의 장점보다는 부족한 점을 더 열심히 찾아봤었다. 나는 그동안 아이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한 게 아니고, 잘하는 모습만 받아들였다는 걸 깨달았다.
자기의 감정을 읽어주지 않는 가정에서 그동안 얼마나 외롭고 두렵고 숨죽이며 살아왔을까 생각하니 아이가 한없이 가여워 보였다. 그제야 아이가 울면서 악을 쓰는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발 나 좀 봐달라고, 제발 나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제발 나 좀 있는 그대로 사랑해 달라고’ 외치는 아이의 속뜻을 알고 나니, 밤마다 우는 아이가 너무 애처로워 같이 눈물을 흘리면서 “엄마가 너무 미안하다, 엄마가 무식해서 너의 마음을 몰라주었어”라고 계속 사과했다.
아침에 아프다고 하면 “그래도 학교는 가야지” 하는 말을 목구멍에서부터 꾹꾹 내리누르고, “많이 아프니? 아프면 푹 쉬어. 공부 안 해도 괜찮아. 우리 1년간 휴학할까? 엄마한테는 네가 제일 소중해” 라는 말을 대신 해주었다.
이렇게 매일 부둥켜안고 울기를 계속했더니 두 달 여가 지난 어느 날 아침, 아이가 갑자기 학교에 가겠다고 가방을 메고 나서는 것이었다. 너무 기뻐서 속이 울컥하는 것을 참으며 아이와 함께 문을 나서며 손을 잡아보는데, 이전엔 자기 몸에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하게 하던 아이가 얌전히 손을 내맡기는 것이었다. 그 날의 그 기쁨이란, 마치 하늘의 구름도 나를 보고 웃고 길가의 꽃들도 나를 보고 웃어주는 것 같았다.
무릇 사람이란 7가지 기본 감정을 갖고 있다고 한다. 분노, 슬픔, 두려움, 혐오, 경멸과 놀라움, 행복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자연스런 감정을 자주 묵살당하는 아이들은 감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되고, 이런 감정을 느끼는 자신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수치심을 갖게 되고 만다. 수치심은 모든 종류의 심리적 질병을 일으키는데 핵심적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부모가 아이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공감을 표현해주면 아이들은 특별한 위로를 느끼며, 궁지에 빠질 때조차도 편안함을 느끼고, 자신감을 갖게 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럼,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도 공감을 표해야 하나요?’라고 묻는 분들이 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행동에 옳고 그름이 있듯, 감정에도 옳고 그름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사실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감정에 반응하는 방식에는 적절함과 부적절함이 있지만, 감정 자체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감정에 대한 공감을 자주 받은 아이들은 통제당한다고 느끼지 않고, 부정적 감정을 키우지 않게 되며, 화난 상황에서도 문제를 적절한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된다.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기저의 감정에 공감을 표하면서도 잘못된 행동에는 반대한다는 뜻을 명확히 전달하고 행동에 한계를 정해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부모는 자녀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우선 자녀를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양육하는 것이다. 또한 자녀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사랑해 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어야 한다.
본인 말로 “사춘기 졸업 중”이라는 큰딸은 얼마 전부터 발 디딜 자리 없이 어질러져 있던 방을 호텔 수준으로 정리정돈을 해놓고는 늘 닫혀있던 방문도 문호개방을 했다. 언니를 매일 사랑스러운 눈길로 보는 엄마 모습을 보며 부러웠는지 둘째딸이 “나도 사춘기면 언니처럼 돼?” 하며 엄마 품에 얼굴을 비빈다. 부모가 변하면 자녀가 변한다는 만고불변의 원리가 우리 집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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