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30분’ 하나님과 함께 한 ACT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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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 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7.11.13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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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 현재 - 미래 짚으며 캠퍼스선교 사명 되새겨
임동국 장로의 사회로 열린 이날 특순에서는 남대극 교수, 손경상 원장, 연명호 원장, 오주현 양이 패널리스트로 단에 올라 ACT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관해 대담을 나눴다. 패널들은 ACT의 태동부터 격동의 80년대와 90년대를 거쳐 뉴 밀레니엄 시대와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사역방향성을 모색했다.
이들은 과거를 돌아보며 반세기의 역사를 경축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아름다운 회상에 매몰되거나 현재의 성숙에 만족하지 않았다.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되새기며, 다가올 1세기 시대에 대한 비전과 사명에 집중했다. 자화자찬하거나 성과를 조명하지 않고 오히려 ACT가 처한 현실을 냉정히 짚었다. 자신들이 달려갈 선교지가 캠퍼스임을 재인식하며, 꿈과 도전에 주목했다.
‘맏형’ 남대극 교수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역사였고, ‘막내’ 오주현 양의 이야기는 현재의 모습이었다. 연명호 원장은 ACT의 황금기를 흥미롭게 펼쳐냈다. 손경상 원장은 “50년이나 됐지만 선교와 양육단체로서는 아직 어린아이 수준”이라며 ACT가 안고 있는 과제를 화두로 던졌다. 의미와 공감을 나눈 이날의 대화를 여기 옮긴다.
■ 나에게 ACT는 무엇이었는가?
남대극: ACT는 오아시스였다. 불신자와 무신자로만 이뤄진 동급생과 세상적인 공부만 하다가 ACT(당시의 이름으로는 ‘SDA학생회’)에 와서 우리 교인 학우들을 만나면 사막을 지나다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마음의 쉼과 영적 교제를 나눌 수 있었다.
손경상: 소명이고 자부심이었다. 남은 자손으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대학생 시절,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에 전할 기별을 가진 자의 소명과 하나님께 소명을 부여받은 자부심을 ACT가 내게 주었다.
연명호: 나에게 ACT는 인맥이다.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 지금 배우자도 신입생수련회에서 얼떨떨해 하던 내게 처음 말을 걸어줬던 사람이었고, 지금 근무처도 ACT에서 만난 선배님이 끌어주셔서 올해 초부터 근무하게 된 곳이다.
ACT는 적은 사람 수, 부족한 재정, 열악한 환경을 극복해가면서 모임을 유지해왔고 또 편하게 신앙하려는 사람보다는 적극적으로 신앙하려는 사람이 많았기에 롤모델이 되는 훌륭한 선배를 많이 만날 수 있었다. ACT 안에서 신앙적으로 힘이 되는 좋은 친구와 후배들을 만난 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소득이다.
오주현: ACT는 전공수업 같다. 갈 때마다 처음 보는 사람이 있어서 조금만 안 가도 새로운 느낌이 드는 것이 마치 수업을 들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드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 나는 언제, 어떻게 ACT 활동을 했는가?
남대극: 1963년 대학에 입학했다. 당시 다니던 대학에서 내가 아는 우리 교인은 손으로 꼽을 만큼의 소수였다. 나는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이었기 때문에 우리 교인을 찾기란 더욱 어려웠다. 그러다가 2학년 때(1964년) 같은 대학의 4학년에 다니는 우리 교인 한 분을 만났고, 내가 4학년이 되었을 때(1966년)는 서너 명의 우리 교인 학생이 입학했다. 그래서 얼마나 반가운지 선배와 후배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던 몇 명을 더 찾아내 약 10명의 우리 교인을 한 자리에 초청해 이른바 ‘SDA학생회’를 조직했다.
모두가 하나같이 기뻐했고, 같은 대학서 같은 믿음의 교인을 만난 것을 매우 감격스러워했다. 그러면서 다른 대학에 다니는 재림교인 학생들에게도 그들의 대학 내에 동일한 조직체를 만들도록 독려했다. 그 결과 우리 교인 학생들이 비교적 많은 대학들에서 ‘[OO대학교] SDA학생회’를 결성했다.
그러나 교인 학생이 적은 대학에서는 모임을 조직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이듬해(1967년) 서울 시내에 있는 모든 대학에 재학하는 모든 교인 대학생에게 연락해 회기동교회(현 본부교회)에서 ‘SDA 총학생회’를 결성했다. 이것이 오늘의 ACT로 발전했다.
손경상: ‘SDA대학생 선교회’를 재조직했던 1982년 2월부터 임원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다.
연명호: 1998년 원주에 있는 대학에 입학 후 성중경 선배의 연락을 받은 게 ACT와의 인연이었다. 원주영어학원교회에서 개강모임 후 샤브 칼국수를 먹으러 갔던 기억이 난다. 원주에서 2년간 대학을 다니며 ACT에 참여했다. 이후 청주에 있는 충북대학교로 대학을 옮기면서 6년간 충북대 ACT캠퍼스 모임과 충청ACT 활동을 했다.
내가 대학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2000년 초반에는 핸드폰의 대중화, 인터넷의 발전,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 싸이월드 등이 대표적으로 대학생의 행동양식에 많은 변화를 준 것들이었다. 그런 것들과 맞물려 오프라인 모임뿐 아니라 온라인 모임도 활성화되는 시기였다.
오주현: 신입생이었던 2014년도부터 지금까지 ACT교회를 다니고 있다. 이듬해 2학기부터 2016년도 1학기까지 회장단에서 서기로 활동했다. 다른 지역 ACT 친구들과 함께 다니엘캠프나 신입생환영회 등 여러 행사를 주최했다. 서중한ACT 단독 행사 외에도 한국ACT 수련회 등 다른 지역의 ACT와 연합활동을 함께할 기회가 많았다.
■ ACT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남대극: 내가 다니던 대학에서 처음으로 우리 교인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나는 독일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이었지만, 종교와 신학에 관심이 많아서 종교학과의 강의를 자주 수강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명관 교수의 ‘종교학 특강’이라는 강의를 듣고 있는데, 바로 옆 자리에 앉은 학생이 강의를 듣는 일에 집중하지 않고, 영어로 된 무슨 책을 열심히 읽으면서 밑줄을 긋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무슨 책을 저렇게 열심히 읽나’ 싶어서 곁눈질로 그 책을 힐끗 훔쳐봤다. 깜짝 놀랐다. 그것은 분명히 안식일학교 교과책이었다. 엄청 놀랍고 반가워서 노트를 찢어서 만든 쪽지에다 영어로 “Are you a Seventh-day Adventist?”라고 써서 건넸다. 그랬더니 그분은 나에게로 시선을 잠시 돌렸다가 내가 준 그 쪽지의 뒷면에다 “Yes, I am. How about you?”라고 써서 나에게 줬다.
그 순간 나는 얼마나 반갑고 신명이 났던지 강의가 어서 끝나기를 바라면서 앉아있었다. 그분이 누구냐면 후에 세계적인 비교종교학자가 된 오강남 박사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분을 만나 대화하고 식사하는 시간을 무척 즐겼고, 마침내는 내가 다니던 서울중앙교회를 떠나 그가 출석하던 회기동교회(현 본부교회)에 출석하면서 찬양대에도 가담했고, 자주 그의 집에 가서 먹기도 하고 놀기도 했다.
손경상: 매주 모임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던 일, 좋은 지도목사님(오충환, 황춘광, 최병남, 김기곤, 하계상 목사님) 그리고 후원을 받으러 가면 당시의 거금인 10만 원짜리 수표를 선뜻 내주셨던 선배님, 오만규 목사님을 모시고 ‘청년아 봄이 되었는가?’라는 제목으로 전도회 하던 일, 매년 초에 갔던 수련회, 지리산 청학동 아랫마을로 갔던 하기봉사대, 부여에서 제1회 전국 대학생수련회를 했던 일 등 다양한 기억이 많이 난다.
연명호: 1999년도에 학교 축제기간에 기독학생회 주최로 찬양대회를 열었는데, 정이정 선배님 중심으로 모여 ‘그날 아침’이란 곡을 준비해 ACT라는 이름으로 참가해 대상을 받았다. 그러나 곧 이단이라는 이유로 수상이 취소됐고, 트로피도 반납하라는 사건이 있었다. 이후 학생회관 옆에 “안식교는 이단이다”라는 대자보가 붙었고, 우리도 그 옆에 더 크게 반박 글을 붙였던 일이 기억난다. 그 사건을 계기로 재림교회의 교리에 관심을 갖고 공부했고, 밤새워가며 신계훈 목사님의 <어두움이 빛을 이기지 못하더라>라는 책을 열심히 읽었다.
오주현: 1학년 말에 다 함께 교회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성경통독 캠프를 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 ACT를 하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일은?
남대극: 내가 재학하던 대학의 캠퍼스에서 신학 강연회를 개최한 게 가장 재미있는 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삼육신학대학의 신학교수들을 초청해 학내에서 연 강연회에 꽤 많은 학생이 참여했고, 강의가 끝난 후에는 진지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당시 초청된 강사는 이영린 교수와 신현철 교수다.
손경상: 소명이 우선이었기에 재미있었던 일은 크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연명호: 개인적으로 ACT의 꽃은 여름수련회라고 생각한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감동적인 설교말씀도 듣고, 재밌는 게임도 하며 밤을 지새웠다. 모든 수련회가 기대했던 것보다 좋았고 재밌었다. 1998년 여름수련회에서의 설렘 가득했던 포크댄스가 기억에 남는다.
2000년 초반부터 시작한 sing along 형식이 아닌 ‘경배와 찬양’ 형식의 찬양예배도 좋았다. 당시 김사무엘이나 한장헌 같은 재능 있는 청년들이 찬양팀을 꾸려 헌신했었다. 2001년과 2002년 평화의동산에서 있었던 한국ACT LT가 기억에 많이 남는데 정말 은혜가 넘쳤다. 말씀을 듣는 것,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 이렇게도 흥미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경험했던 것 같다.
오주현: 신입생 당시 캠퍼스 모임을 하면서 언니오빠과 말씀도 듣고, 같이 놀았던 게 제일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 ACT를 하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일은?
남대극: 우리 교인의 수가 너무 적은 것이었다. 무엇인가를 하고 싶고, 선교활동도 하려고 했지만 각 단과대학으로 나뉘어 있는 당시의 상황 때문에 우리 교인이 한 곳에 모이는 게 불가능했다. 따라서 교내 선교활동은 거의 하지 못했다.
손경상: 학생 수준에서 책임지기 힘든 일들을 담당하고 처리해야 할 때에 많이 힘들었다. 교단의 지도자들이 대학생들이 모임을 갖는 것을 오히려 싫어했기에 교단을 설득해야 했다. 그래서 더욱 힘들었던 것 같다.
연명호: 사람들이 모이지 않을 때나 나 자신이 ACT답지 못할 때였다.
■ ACT가 나의 신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남대극: 같은 종합대학에 우리 교인 학생이 있고, 드물지만 그들과 함께 모여 예배도 하고 특별한 활동을 계획하는 것은 나의 대학생활을 매우 즐겁게 해줬다. 신앙적 외톨이를 벗어나 좀 더 큰 자신감과 사명감을 갖게 했다.
손경상: 신앙은 시련을 이기고 무엇인가 열심히 하면서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ACT를 하면 성경을 봐야 했고, 친구들에게 기별을 전해야하는 부담과 자극을 받았기에 그만큼 신앙이 성장했다. 다양한 문화와 생각, 사상이 넘쳐나는 대학시절에 자신이 가진 신앙과 신념을 적극적으로 성장시키지 않으면 세상의 다양한 사상과 문화에 우리 자신이 흡수되기 쉽다. 그렇기에 자신의 신앙과 신념이 옳다면, 또 옳은지를 결정하면서 대학시절 다양한 신앙경험을 쌓으면 좋겠다.
연명호: 집과 삼육학교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내가 집을 떠나 타지에서 신앙을 하며 홀로서기를 해야 할 때 ACT가 가장 큰 힘이 되었고, ACT활동을 하면서 해결해나간 고민거리들이 신앙적으로 성숙해 가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오주현: 제일 엇나갈 수 있는 대학교 초반에 다른 교회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교회에 정을 붙이게 해 줬다는 점이다. 수동적으로 설교를 듣는 것만 하는 것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말씀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 나의 자녀(혹은 동생이나 후배)에게 ACT가 어떠했으면 좋겠나?
남대극: 동료 교인을 가능한 많이 찾아내 그들과 함께 대학생활을 영위하도록 하면 좋겠다. 대학 재학 동안 맺은 우정은 가장 오래 가는 관계가 될 것이고, 따라서 교회 내 활동과 봉사에도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우정은 지도력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하면서 ACT를 통해 폭넓은 교우관계를 갖도록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손경상: ACT의 핵심가치처럼 구원과 봉사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양육의 보금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연명호: 세속화된 대학 내에서 재림신앙을 꿋꿋하게 잘 지켜낼 뿐만 아니라 선교의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ACT가 여러 기회를 제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ACT활동을 하며 꼭 좋은 배우자를 만났으면 좋겠다.
오주현: 평소 갖고 있는 의문점이나 내놓고 싶은 의견을 어른들 눈치 보면서 행동하지 않고 서로 편하게 이야기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길 바란다.
■ ACT 50주년을 맞이해 앞으로 50년을 기대하며 하고 싶은 말은?
남대극: ACT 조직체가 우리 학생들의 쉼터가 되어 아무 때나 거기에 와서 쉬고 공부하고 생활까지 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큰 건물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이다.
손경상: 30주년 정도에 숙원인 ACT교회를 설립했고, 40주년을 넘기면서 ACT의 본부를 마련했다. 이제 남은 것이 무엇일까? 50년이나 됐지만 선교와 양육단체로서 아직 어린아이 수준에 머물러 있다. 물론 그동안 교단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훌륭한 선배를 배출했고, 많은 대학생의 신앙을 유지·관리, 성장시키는 일에 큰 역할을 담당했지만, ACT의 무한한 성장 잠재력을 생각할 때 아직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현실이라 판단된다.
현재 ACT는 교단의 집중적인 뒷받침도 없고, 그렇다고 선배들의 전폭적인 지원도 부족한 상황이다. 자체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고, 선교와 양육단체의 가장 초보적인 필수요소인 스스로 기별을 전하는 대학생으로 양육 성장시킬 교재도 마련돼 있지 않다.
각 지역 혹은 캠퍼스에서 대학생과 호흡을 같이할 대학선교 전문가인 간사도 부족한 상태이며 전임 간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정말 ACT가 이 시대에 세 천사의 기별을 전하는 사명을 가진 교단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분야라면 ACT의 핵심가치를 심어줄 교재와 간사들의 조직체계를 속히 갖춰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졸업 후에도 꾸준히 후배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한 번 ACT인은 영원한 ACT인’이라는 생각이 무리 모두의 뇌리에 깊이 새겨졌으면 하는 소망이 간절하다.
연명호: ACT는 캠퍼스 모임에서 그 본연의 목적과 사명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 수가 적기 때문에 연합으로 모이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에 참 안타까운 일이다. 지역교회 청년활동과 마찰 없이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라도 ACT는 캠퍼스 중심의 모임이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적극적인 OB모임이 필요하며 활발한 간사지원이 있어야 한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ACT를 졸업했다 생각하지 말고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내가 속한 지역의 ACT를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이 있으면 좋겠다.
오주현: 본인은 시간이 지나면서 대학생들의 모임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어떤 비전을 가져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공동체의식을 점점 잊고 살아가는 것 같다. 50주년을 기념해서 그런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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