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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사미디어 등록일 202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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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과일만 먹으면 일어나는 일

최근에 속이 좀 좋지 않아서 금식을 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완전한 금식이라기보다는 과일만 먹으면서 며칠을 보냈다. 과일은 위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소화가 쉽기 때문에 충분히 먹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끼 정도 충분히 포만감이 느껴질 때까지 수박과 참외를 먹었고 하루를 보냈다. 그러면서 가끔 허기가 느껴지면 그때마다 잘라 놓은 수박을 조금씩 먹었다. 


나는 이른바 과일식을 하면서 몇 가지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과일은 칼로리가 낮지만 충분히 먹으면 하루를 거뜬하게 보낼 수 있다는 점과 피곤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내가 주목한 몸의 변화는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동안 나는 커피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피곤함을 쫓기 위해 마셨다. 그런 내가 카페인의 도움 없이도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라웠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음식 중에 가장 소화가 쉽고 빠른 음식은 과일뿐이다. 본래 우리가 섭취한 음식은 소화가 되면서 인체 내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포도당, 과당, 글리세린, 아미노산, 지방산 등으로 변형되어야 한다. 그런데 과일은 포도당 그 자체다. 이미 소화가 되어 있는 상태라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적은 에너지만으로도 충분히 소화와 흡수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인체의 모든 신진대사 활동은 우리가 먹은 음식에서 얻은 에너지를 이용하는데, 과일은 최소한의 에너지만으로도 소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흡수된 포도당은 즉시 에너지원으로서 온전히 몸에 축적된다. 결론적으로 내가 피곤하지 않았던 이유는 섭취한 칼로리를 소화하는 데 거의 쓰지 않고 고스란히 나의 에너지원으로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일은 만성 피로 치료의 핵심

문득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먹는 것이 에너지 소모와 피로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면 ‘만성 피로 역시 음식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다양한 자료를 찾아보던 도중 과일과 채소 위주의 식단이 내가 알던 것 이상으로 만성 피로의 치료에는 물론이고 건강을 위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만성 피로는 현대인 10명 중 절반이 시달리는 ‘증후군’이다. 증후군이라고 하는 이유는 현재까지 만성 피로의 원인이 제대로 밝혀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만성 피로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여러 문제가 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원인에 대한 의견이 모두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해결책에 대해서 만큼은 대부분의 전문가가 한목소리를 낸다.


만성 피로를 관리하는 공통의 해결책으로서 가공식품 같은 정제된 식품은 피하고 충분한 탄수화물의 공급(통곡물) 그리고 과일과 채소 위주의 식단을 권했다. 물론 채식 위주의 식단 말고도 정기적이고 규칙적인 운동 및 스트레스 관리도 있었지만 식이 요법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어떻게 원인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병을 채소와 과일의 섭취로 극복할 수 있을까? 나는 과일과 채소가 신체의 에너지원으로서 효율이 좋다는 측면에서 단순히 만성 피로와의 연관성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만성 피로는 자칫하면 개인의 삶 자체에 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과일과 채소의 섭취가 대책으로 언급되는 것이 놀라웠다. 


만성 피로는 우리가 평소에 일상적으로 느끼는 그런 일시적인 피로감이 아니다. 보통의 피로감은 잠깐의 휴식 또는 충분한 수면으로서 해결이 가능하다. 반면 ‘만성 피로’는 충분히 잠을 자거나 적절한 휴식을 취한 후에도 피로감이 회복되지 않는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만성 피로의 증상으로는 극도의 피로감, 활력 고갈, 인지 및 집중력 저하, 머리에 안개가 낀 것과 같은 브레인 포그 등의 다양한 증상이 있다. 그리고 만성 피로가 심해지면 면역력 저하로 이어지고 심지어 다른 합병증이 발생할 수도 있다. 



채소와 과일이 만성 피로의 해결책인 이유

그렇다면 과일과 채소가 어떻게 만성 피로를 극복하는 데 구체적으로 도움이 되는 걸까? 나는 명확한 근거를 찾기 위해 자료를 찾던 중 과일과 채소가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고 하는 장내미생물 중에 ‘유익균’의 먹이감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유익균의 증식으로 인해 장이 건강해지면 면역력이 강해질 뿐 아니라 뇌의 건강도 좋아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의 장(臟)은 ‘제2의 뇌’라고 한다. 실제로 장에는 뇌 다음으로 많은 신경 세포가 있으며, 약 1억 개의 신경 세포가 장내 벽에 그물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뇌처럼 40여 종의 신경 전달 물질을 합성한다. 그중 하나가 행복 호르몬으로 알려진 ‘세로토닌(serotonin)’이다. 세로토닌은 우리 뇌 전체를 순환하며 인지, 감정, 수면 등을 조절하는 중요한 뇌 신경 전달 물질이다. 이렇게 세로토닌은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유지시켜 주는 중요한 호르몬인데, 세로토닌의 약 90%가 장에서 생성된다. 그리고 세로토닌은 과일과 채소의 복합 탄수화물을 섭취할 때 가장 많이 만들어진다. 미국의 건강 전문지 ‘프리벤션’은 하루에 7-8회 정도 과일과 채소를 섭취하면 다음 날 기분이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을 소개하기도 했다. 



채식은 선택이 아닌 의무 

나는 세로토닌의 역할에 주목을 했다. 만성 피로의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많은 방법이 모두 세로토닌의 분비를 촉진하는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과일과 채소의 지속적이고 충분한 섭취는 세로토닌을 가장 효율적으로 분비시키는 수단인 동시에 장을 건강하게 만들어 면역력을 회복시키는 핵심적인 방법이었다. 이런 해결책 뒤에는 분명 ‘장의 건강’이 많은 건강 문제의 원인이라는 근본적인 생각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호기심에 시작한 조사였지만 ‘제2의 뇌’라고 하는 장(臟)의 건강의 핵심은 채소와 과일이며, 장의 건강이 곧 뇌의 건강이자 신체의 건강이라는 사실은 굉장히 인상적이면서도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또한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어야 건강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던 근거라고 유추할 수 있었다. 왜 채식을 해야 하냐고 묻지 마라. 채식은 의무이다.



​홍승권 ​채식 요리 연구가,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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