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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월호 2023년 5월호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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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는 과제, 놀라우신 하나님

2023년 2월 2일에 인터뷰를 진행한 뒤 3월 11일 윌리엄 존슨 목사가 갑작스레 서거했습니다. 기사 내용은 처음에 작성한 그대로 소개합니다. -편집실


달력에 2004년 2월 18일이 진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윌리엄(빌) 존슨 당시 『애드벤티스트 리뷰』 편집장은 상의할 문제가 있어 얀 폴슨 대총회장과 약속을 잡아 놓았다. 약속 당일 사무실에 들어서자 대총회장은 존슨의 문제를 제쳐 두고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전 세계 재림교회의 연합에 기여할 공유 매체 즉 잡지가 필요합니다. 『애드벤티스트 리뷰』 직원들이 이 방법을 모색해 주셨으면 합니다.”

구체적인 주문 사항은? 전 세계 약 100만 교인 가정에 교회 소식을 무료로 보내되 영어를 사용하는 지역에 먼저 초점을 맞출 것. 이후 재정이 마련되면 다른 언어로 추가 번역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총회장은 덧붙여 말했다. “현재 이 계획에 활용할 수 있는 예산은 없고 추가 직원도 제공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작업을 다 마치더라도 자금이 없어서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불가능을 껴안다1

만만치 않은 과제였다. 하지만 “빌(윌리엄 존슨)은 즉시 그 일에 매우 열성적이었다.”라고 폴슨 전 대총회장은 말했다. “아주 기막힌 아이디어로군요. 해낼 수만 있다면요.”라고 존슨이 대답했다고 폴슨은 회상했다.

존슨도 비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화들짝 놀랐지만 솔직히 매우 기뻤어요.”

그는 “다양성을 지닌 멋진 교회를 한데 묶여 연합을 강화”하도록 돕는 일이 출판의 핵심 사명이라면서 “개인적으로 이것은 절실히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어요. 70세 생일이 두어 달밖에 남지 않았고 1~2년 안에 은퇴할 계획이었지만 저는 대총회장에게 ‘그렇게 하겠다. 적극적으로 도와서 직원 모두 이 일에 동참하도록 힘쓰겠다.’고 대답했어요.”

1999~2010년에 대총회장을 역임한 폴슨 목사는 전 세계적인 교회 소식지 제작을 갑작스레 생각해 낸 것이 아니다. 13개의 지회와 지역에 걸쳐 있는 재림교인들의 연합을 강화할 방법에 대한 부담감이 늘 있었다. 

“1995년 대총회 부회장이 되었을 즈음에 저는 이미 여러 나라에서 살아 보았고 일종의 국제주의자가 되어 있었어요. 재림교인들이 하나로 뭉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늘 마음이 무거웠지요. 그게 아주 큰 부담이었어요. 다양성을 지닌 이 집단이 어떻게 하면 국제적인 한 가족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요. 문화 간의 차이는 미미한 게 아니라 엄청난 사항이거든요.”

폴슨 목사는 다른 곳의 재림교회는 어떤 모습인지 알고 싶은 호기심이 재림교인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점을 눈여겨보았다. 또 그 차이점이 교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모두 궁금해한다고 그는 말한다. 

세계적인 교회 잡지의 타당성과 관련해 교회 지도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떠올렸다고 폴슨 전 대총회장은 말했다. ‘우리를 재림교인으로 규정하는 핵심 가치는 무엇일까? 이 가치들은 다른 곳에 전달되면서 바뀌는가? 다른 문화보다 나의 문화 속에서 비중이 더 커지는 가치들이 있는가?’ “이런 것들은 어려운 문제”라고 폴슨은 말했다.

“잡지는 우리가 공유하는 가치를 함양하고, 알리고, 활성화하고, 확인하는 매개물이 되어야 했어요.” 폴슨 전 대총회장은 설명했다. “전 세계에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우리가 한 가족임을 알리는 것이어야 했지요.”

“교회가 빠르게 성장하고 확장될수록 새로운 재림교회 공동체에 다가가 그들을 포용할 무언가가 분명히 필요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전도 매체이기도 했습니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도전을 받아들이다

존슨 편집장은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이 도전을 그대로 전달했다.

“즉시 스태프들을 소집했고 대총회장의 주문 사항을 전했어요. 현재로서 예산은 없으며 추가 인력도 제공되지 않는다고 알려 주었지요. 실현되지 못한 비전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점도요.” 존슨은 1982년부터 2006년까지 『애드벤티스트 리뷰』의 편집장이었다. “그 당시 우리는 매주 인쇄물을 발행했고 그것만으로도 일이 산더미였지요. 그러니 이 프로젝트에 대해 한두 명이 손사래를 치는 것도 당연했어요. 하지만 그들은 곧 태도를 바꾸었고 모든 직원이 훌륭하게 그 일을 해냈어요.” 

로이 애덤스 당시 부편집장도 어마어마한 추가적인 책임을 꺼리는 사람 중 하나였다.

“이미 저희는 『애드벤티스트 리뷰』를 북미판, 세계판, 커팅 에지, 앵커포인트 4가지로 매주 발행하는 중이었지요. 각 판형의 마감일 맞추기도 빠듯한 데다가 대총회 총회가 떡하니 기다리고 있었어요. 몇 달에 걸쳐 준비해야 했고 행사 기간에 치열하게 뛰어다녀야 할 것은 말할 것도 없었지요. 추가 인원 지원도 없이 지시를 내렸다는 말을 듣고 이스라엘 노예들에게 지푸라기 없이 벽돌을 만들라고 요구하는 이집트 작업 감독관이 떠올랐어요.

하지만 일단 감정을 가라앉히고 나니 새로운 모험에 대해 저도 공감하고 있더군요. 우리가 전 세계를 상대로 일하고 있다면 주요 지도자들이 전 세계의 재림교회 공동체와 꾸준히 직접 소통할 도구가 있어야 한다고 늘 생각했거든요. 그 확신 때문에 스태프들과 함께 힘을 쏟아부어 그 어려운 작업을 해냈어요.”

존슨 편집장은 세계적 교회 소식지를 만들려는 계획이 다차원적인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 편집, 디자인, 제작, 배포, 재정 그리고 주간지 『애드벤티스트 리뷰』에 미치는 영향까지 헤아려야 했다. 직원들과 함께 이 작업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일은 더 크고 복잡해졌다고 그는 말했다. “포괄적이고 세계적인 작업, 숨이 턱 막히는 과제였어요.”2 북미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인쇄가 가능한지 알아봐야 했다. 존슨은 또 운송 조건, 빠르면서 합리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방법도 찾아내야 했다. 모든 자료를 한데 모아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주간 직원 회의에서 그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날 늦게 멀 포이리어가 지원자로 나섰다. 포이리어는 당시 『애드벤티스트 리뷰』의 기술 코디네이터였고 현재는 『애드벤티스트 리뷰』와 『애드벤티스트 월드』 두 잡지의 운영 관리자로 일하고 있다.

“멀이 귀중한 도움을 제공했어요.” 존슨이 말했다. “그는 매우 섬세한 마음을 지닌 데다가 조직에도 재능이 있었어요. 환상적인 적임자였지요.”

“참고할 만한 모델이 어디에도 없었다.”고 존슨은 말했다. “잡지 하나를 전 세계에 배포한다는 계획은 재림교인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일 거예요.”라며 그는 웃었다. 

리뷰 스태프들에게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했다. 지금까지 북미 독자를 주 대상으로 콘텐츠를 제작했다면 이제는 전 세계를 염두에 두어야 했다.

“세계적인 잡지가 되어야 했지요.” 존슨은 이 점을 지적했다. “편집자들에게 미국식 표현과 관용구를 사용하지 말고 미국에서 나온 삽화를 피하라고 했어요. 세계 교회에 적합한 콘텐츠를 찾아야 했고 우리에게는 힘든 변화였어요.”  


재정 문제

희망과 꿈도 있었지만 재정 조달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자금은 어디서 조달할 것인가? 성령께서 스티브 로스 당시 대총회 수석부재무를 통해 해답을 제시해 주셨다고 존슨은 믿고 있다. 

“일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대총회는 재정이 넉넉하지 않아요. 예비 자금이 조금 있지만 모든 재정은 예산에 따라 배정돼요. 화수분 같은 것은 없었지요. 그러나 스티브는 우리와 매우 긴밀하게 일했고 이 프로젝트에 전적으로 공감했어요. 그는 한국 교회에서 답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어요.” 

한국 교회에서 대총회로 보내야 할 재정은 수십 년간 해외로 이체되지 못하고 국내에 묶여 있는 상태였다. 한국 정부는 자금을 경화(硬貨, 말하자면 달러화)로 이체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했다. 한국 화폐인 원화로만 가능했다. 경화로 바꾸려면 막대한 세금이 부과된다. 

“스티브와 저는 한국으로 가서 최고의 세금 전문 변호사를 만났어요.” 존슨이 그때를 회상했다. “변호사는 법을 상세히 설명했고 상황은 불가능해 보였어요. 묶여 있는 자금을 활용하려면 잡지의 발행 주체가 한국에 있는 교회여야 했거든요. 대총회가 아니라요. 한국에서 돌아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까?’ 하고 생각했죠.”

전병덕 목사가 상황을 거들겠다고 자청한 것이 바로 그때였다. 당시는 그가 북아시아태평양지회장에서 은퇴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이다. “저에게 한번 맡겨 주세요.”라고 했던 전 목사의 말을 존슨은 기억하고 있다.

전병덕 목사는 고위 관계자를 개인적으로 만났고, 그는 교회의 사정을 듣고 나서 이렇게 대답했다. “법이 그렇습니다만 예외가 있을 수 있어요.”

서울 시조사에 있는 한국인 출판 담당자 2명이 편집진으로 합류했고 한국인 독자를 위한 잡지는 시조사에서 인쇄했다. 전 목사는 『애드벤티스트 월드』 이사회 일원이 되었다. 이러한 조정을 통해 대총회는 잡지 발행 주체로 남을 수 있었고 자금도 합법적으로 풀려 프로젝트 재정으로 사용됐다.

“뒤늦게 자금줄이 풀린 이 일이야말로 『애드벤티스트 월드』 사업과 관련해 가장 큰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어요.”라고 존슨은 말했다.

“꿈도 꿀 수 없던 일이 재정 문제를 포함해 이토록 신속하게 모두 해결되어 깜짝 놀랐어요.”라고 얀 폴슨은 회상했다. “저는 이것이 하늘의 영감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라고 믿어요.”


위기 국면

메릴랜드주 해거스타운에 있는 리뷰 앤드 헤럴드 출판사는 『애드벤티스트 월드』의 계획과 개발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디자인의 모든 측면을 다룰 만한 기술 스태프가 부족했다. 그래서 재림교인 제프 데버가 운영하는 데버 디자인에서 북미뿐 아니라 아프리카, 유럽 지역에도 적합한 새로운 32쪽짜리 잡지의 틀을 개발했다. 리뷰 앤드 헤럴드 출판사는 월별 디자인을 담당했다.

“『애드벤티스트 월드』 창간호 발행일이 다가오고 디자인된 파일을 각 출판사에 컴퓨터로 전송해야 하는 마감일이 닥치자 리뷰 앤드 헤럴드 출판사뿐 아니라 미국에 있는 두 번째 출판사, 한국의 시조사, 호주의 사인스 출판사의 도움 없이는 안 되겠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라고 존슨은 말했다. “그때가 바로 가장 큰 고비였어요. 우리는 2005년 9월 대총회 본부에서 열린 연례 행정위원회 때 이 잡지를 발간할 예정이었어요. 8월 초에 가족과 함께 해변으로 휴가를 갔을 때 우리에게 큰 문제가 있다는 점이 분명해졌어요.”

제프 데버는 갑작스러운 통보에도 도와주기로 했고 콘텐츠 흐름과 잡지 디자인을 맡았다.

“데버 디자인(제프 데버의 회사명)은 밤낮으로 작업했고 우리는 인쇄 마감일을 맞출 수 있었어요.”라고 존슨은 말했다.

데버 디자인은 2017년까지 『애드벤티스트 월드』의 디자인을 계속 담당했다.  


발행

『애드벤티스트 월드』의 구상은 2004년 대총회 추계 회의에서 가결했고, 디자인은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제58차 대총회 총회에서 7월 2일에 발표했다. 창간호는 2005년 9월에 발행했고 2005년 10월 3일 자 『애드벤티스트 월드』 출판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초판은 110만 부를 인쇄했다. 연간 비용은 250만 달러로 추산했다. 의사록에는 한국, 남태평양, 북미, 인터-아메리카, 트랜스-유럽 5개 에디션도 언급되어 있다. 창간호의 커버스토리 제목은 ‘지하 교회’였다. 잡지를 선교용 매체로 사용할 가능성까지 고려해 존슨 편집장은 각 호의 독자가 5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잡지는 각 지회로 직접 보냈고 지회는 연합회, 합회, 교회로 발송하는 책임을 맡았다.

“창간호를 발행했을 때 ‘당신이 은퇴하고 나면 이 사업도 끝나고 다른 일이 대신할 것’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어요.”라고 존슨은 회상했다. “하지만 18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발행되고 있지요. 하나님께 찬양드립니다.” 

2004년 2월 구상부터 2005년 9월 잡지 발행에 이르기까지 『애드벤티스트 월드』가 발빠르게 진행된 점에 대해 존슨 전 편집장은 “주께서 이루신 일”이라고 말했다.

“몇 달 동안 치열하게 그 일에만 몰두했어요. 잡지가 온통 제 삶을 차지하고 있었지요. 문제를 안고 막막한 심정으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튿날 아침이면 답을 얻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 일이 계속 일어났어요. 주님이 하신 일이에요.”  

폴슨도 맞장구를 쳤다. “우리가 이 일을 해낼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돕고 계신다고 저는 처음부터 믿고 있었어요.”


확장

『애드벤티스트 월드』 창간호는 영어로 인쇄됐지만 교회 지도자들은 언어를 추가해 독자층을 넓히기로 했다. 2006년 말, 빌 존슨 편집장이 은퇴한 뒤 『애드벤티스트 리뷰』 및 『애드벤티스트 월드』 편집국장으로 선출된 빌 노트가 2007년 클로드 리츨리를 스태프에 합류시켰다. 리츨리는 당시 동-중앙아프리카지회의 행정부총무였다. 그는 여러 지역을 다녔고 다양한 언어를 구사해 3개 대륙을 고향처럼 편하게 여겼다. 노트가 자신을 부발행인 겸 마케팅부장으로 추천한 이유가 그 때문일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제가 잡지 확장에 도움이 될 여러 인맥을 연결해 줄 거라고 생각했겠죠.”

리츨리는 “특히 아프리카에서 이 잡지의 잠재력이 클 거라고 보았어요.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가 그곳 사람들에게는 별로 없었거든요. 선교 매체로 사용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현재 ‘아미스(ARMies)’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애드벤티스트 리뷰』/『애드벤티스트 월드』 사무소에서 리츨리가 근무한 8년 동안 『애드벤티스트 월드』는 세계적인 잡지로 발돋움해 150여 국가에서 33개 언어(인쇄물 및 온라인)로 배포됐다.3 전 세계 19개 인쇄소 및 출판소에서 발행되는 총부수는 150만 부에 이르렀다.4 

오늘날에는 매년 약 160만 부를 11회에 걸쳐 9개 언어로 인쇄해 13개 지회 중 10개 지회에 배포한다. 

2020년 10월에는 왓츠앱 채널을 새로 개설해 스와힐리어로 읽고 쓰는 재림교인 200만여 명이 자신의 언어로 『애드벤티스트 월드』에 접속할 수 있다.5 현재 ARMies에서는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에 대해 소개하는 비디오와 오디오 스토리도 제작하고 있다.6

일부 연합회의 지역의 사정을 감안해 리츨리는 지면을 줄인 『애드벤티스트 월드 다이제스트』의 제작도 시작했다. 16페이지로 구성된 다이제스트판은 『애드벤티스트 월드』 축약본이며 계간으로 발행한다. 

“『애드벤티스트 월드 다이제스트』는 지역 연합회의 필요와 재정적 형편에 최적화된 편집본”이며 “매우 가파르게 성장했다.”라고 리츨리는 설명했다. 


회고

『애드벤티스트 월드』와 함께한 지난날과 급속한 성장, 잡지의 세계적 영향력을 되돌아보면서 존슨 전 편집장은 모든 찬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애드벤티스트 리뷰』의 편집장으로 있는 동안 가장 큰 부담은 잡지의 부수 감소였어요. 이 문제로 힘들었고 대책을 찾고자 애썼어요. 그런데 인터넷과 온라인 출판물이 등장했어요. 우리는 싸움에서 지고 있었지요. 편집장을 맡았을 때 저는 발행 부수가 10만 부를 넘을 때까지 발 뻗고 잠을 잘 수 없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계속 애썼지만 숫자는 계속 떨어졌어요. 결국 10만 부 발행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로 단념했어요.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일 때 『애드벤티스트 월드』가 나타난 거예요. 인쇄소 네 곳에서 똑같은 잡지를 찍어 낸 창간호를 보면서 가슴이 멎는 듯했어요. 발행 부수는 무려 110만 부였어요. 저는 10만 부를 꿈꾸고 있었는데 말이죠.

우리가 섬기는 주님은 바로 그런 분이세요. 그분은 우리가 구하고 상상하는 이상으로 풍성한 하나님이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이십니다.”



1 본 소제목은 다음의 책 제목을 인용한 것이다. William Johnsson’s book Embracing the Impossible(Hagerstown, Md.: Review and Herald Pub. Assn., 2008)

2 앞의 책, 215

https://adventistreview.org/author/claude-richli/

4 Ibid.

https://www.adventistworld.org/millions-of-kiswahili-speakers-can-now-read-adventist-world-in-their-mother-tongue/

https://www.adventistworld.org/media/



샌드라 블랙머 18년 이상 『애드벤티스트 월드』와 『애드벤티스트 리뷰』 부편집장으로 봉사한 뒤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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