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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월호 2024년 10월호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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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선교 봉사자들을 위한 돌봄 네트워크 구축

결정적인 요소

해외 선교 봉사자들을 위한 돌봄 네트워크 구축


에이미 위쳇


태국의 방콕에서 맞는 새해 전야였다. 아들 둘은 흥분에 들떠서 몇 주 전 중국 시장에서 아빠를 설득해 구입한 불꽃놀이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학교 친구들과 재미있게 보내려 했던 밤이었는데 대미를 장식할 13cm짜리 불꽃탄이 아들의 얼굴로 날아들면서 악몽으로 바뀌었다. 이후 몇 분간의 기억이 흐릿하지만 내가 아들의 학교 친구들에게 둘러싸였고, 아들의 얼굴, 머리카락, 귀에서 불씨가 깜박거렸고, 한밤중의 캄캄한 어둠 속에서 아들이 얼마나 다쳤는지 확인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몇 분 뒤 우리는 아이를 얼른 차 뒷좌석에 태우고 아이의 머리를 감싼 다음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내달렸다. 아들은 간단한 검사를 마치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15살 아들을 중환자실에 남겨 두고 부상이 어느 정도 심각한지도 모른 채 기다리는 시간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수백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폭죽놀이를 못하도록 했다면 어땠을까?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부상을 피할 수 있었을까? 신체적 부상은 어느 정도일까? 혹시 시력을 잃지는 않을까? 사고로 실명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얼굴이 평생 변형되면 어떻게 하나? 뇌 손상은 없었을까? 충격으로 분명 손상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손상됐을까? 뇌에 쌓이는 압력을 완화하려면 밤에 응급 수술을 받아야 할까? 첫 충격이 가신다 해도 끔찍한 뇌의 손상과 정신적 외상으로 고통을 당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지?

아들의 감정 상태는 어떨까? 낯선 기계의 윙윙거리는 소리에 둘러싸여 혼자 있는 데다 언어도 거의 이해할 수 없을 텐데 두려움에 떨고 있지는 않을까? 두려움에 잠을 못 이루는 것은 아닐까? 울고 있을까? 통증은 어느 정도일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와 만날 수 있는 아침까지 기다리려고 참고 있을까? 의학적인 궁금증보다 아들의 정서적인 상태에 관한 걱정이 더 컸다. 중환자실에서 아들의 손을 잡고 혼자가 아님을 알려 주고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눈물을 쏟으며 남편과 나는 서로 부둥켜안고 아들과 의료진을 위해 기도했다. 머리가 복잡한 가운데 괭이잠을 반복했다.

이후 며칠 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다. 여러 날이 지나고 몇 차례 수술을 거쳐 아들은 병원에서 퇴원했다. 몇 주가 흐른 뒤 아들은 완전하고 기적적인 회복을 경험했다. 얼마나 큰 기적인지 얼굴만 보더라도 폭죽 사고를 겪었으리라고는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으로 좋은 분이셨다.


명백한 위험

우리의 경험이 흔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모든 선교사에게는 각자만의 독특한 이야기가 있다. 우리와 비슷한 트라우마를 겪지 않는 선교사도 있겠지만 더 상황이 나쁜 경험을 하는 선교사도 있다. 하지만 모든 선교사는 자신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는 도전과 어려움에 직면하며 그로 인해 어떤 선교사는 평생 상처를 지니고 살기도 한다. 우리가 인식하는 이러한 위험은 문화가 다른 곳에서 선교사로 살 때 치러야 할 대가의 일부분이다. 

바울은 고난에 매우 익숙한 선교사였다. 고린도후서 11장에 그는 그때까지 견뎌 낸 시련을 기록했다. 매도 수없이 맞고, 돌로 맞고,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며, 바다에서 좌초해 날밤을 보냈고,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 유대인의 위험과 그가 섬겼던 이방인들이 주는 위험을 겪었다. 오늘날의 선교사들은 바울과 같은 일을 겪으면 회복 과정의 일부로 특별한 보고와 상담을 받는다.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을 기뻐하는 법(고후 12:9)과 자신이 처한 상황과 관계없이 만족하는 법(빌 4:11~13)을 배웠으며 자신을 지지해 주는 공동체의 가치 또한 알았다. 성경에서 그는 독자들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여덟 번이나 간청했다. 때때로 그는 열매 맺는 사역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어떤 때는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달라는 기도를 요청하거나 감옥에서 구출해 달라는 기도 요청과 같은 훨씬 더 개인적인 요청도 있다.

그런데 기도는 바울이 간절히 원했던 유일한 요청이 아니었다. 사도 바울은 죽기 얼마 전 작성한 옥중서신에서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리고 “빨리 내게로 오라”고 재촉했다(딤후 4:9). 모두가 떠나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은 결단코 흔들리지 않았지만 바울은 어려운 시기에 동반자의 가치를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라고 전도서 4장 9~10절에서는 말한다. 바울은 이 사실을 알았고, 분명히 가장 필요할 때 지원을 요청할 만큼 자신의 곤란을 알고 있었다. 


보살핌이란

오늘날 선교사 중에 바울이 경험한 난파나 돌로 맞는 일을 겪는 이들은 거의 없고, J. N. 앤드루스 시대보다 통신 시설과 교통이 발달해 고국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연락하는 일이 더 쉬워졌지만 선교사의 삶을 들여다보면 현실은 그때 못지않게 어렵고 난관이 많다. 죄로 가득한 세상에 사는 결과로 나쁜 일들이 일어날 뿐 아니라 우리의 선교사들은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로 싸운다(엡 6:12). 선교사들이 원수의 영토에서 영적 전쟁을 벌이는 동안 사탄은 복음의 진전을 막으려고 더욱 힘쓴다. 사탄은 죄인 한 명이라도 더 희망과 자유를 발견하지 못하도록 온 힘을 다하며, 종종 선교사와 복음 교역자를 직접 공격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총회는 선교사 지원 시스템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했다. 특히 선교 재집중(Mission Refocus)에 착수해 선교사 임명과 예산을 재조정하고, 미전도 지역을 위해 선교하고, 현재 예배 모임이 없는 곳에 예배 모임을 만드는 데 더 중점을 두는 계획을 시작했다. 이러한 최전선 사역자들이 더욱 고립되고 어려운 환경에서 일할 것임을 인식하고, 자신이 속한 지회 밖에서 일하는 대총회 선교사를 위한 포괄적 지원 시스템을 개발하고자 새로운 국제 봉사자(ISE) 돌봄 및 지원 관리자라는 새로운 직책을 세웠다. 그런데 선교사 돌봄이란 무엇인가?

선교사 돌봄 분야의 지도자인 해리 호프먼은 타 문화에서 활동하는 개인과 가족의 신체·정서·영성·관계적 필요를 해결하는 포괄적 돌봄을 제공하는 것이 선교사 돌봄이라고 정의한다. 목적은 선교사의 복지를 돕고, 봉사 역할의 효율성을 보장하고, 개인과 가족이 도전적인 환경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상담, 의료, 교육, 지속적인 지원 등의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교사 프로그램의 이모저모를 탐구하고 있지만 선교사들이 선교 현장에서 단순히 살아남을 뿐 아니라 성공하도록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자 힘쓴다.


지원 시스템

선교 현장에서 우리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아들의 사고를 포함해 우리가 어려운 상황들을 이겨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인생 최고의 순간’을 지날 때든 ‘사막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든 우리와 함께한 지원 팀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다쳤을 때 대총회 국제 인사 서비스 팀은 우리와 협력해 병원비를 지급해 주었고, 아들이 더 나은 병원으로 후송되어야 할 경우를 대비한 계획을 수립해 주었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기도했고, 아들이 입원해 있는 동안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다.

지역 교회 지도부가 병원에 찾아와 아들의 병상을 에워싸고 아들의 치유를 위해 기도해 주었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은 쾌유를 기원하는 메모가 담긴 포스터를 만들어 보내 주었고 아들은 이를 수년간 보관했다. 지역 교회 회원들이 우리 집을 방문해 음식을 챙겨 주고 아들의 회복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었다. 본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은 기도 사슬을 동원해 24시간 내내 기도 봉사를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휴가를 내어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 손자의 회복을 도왔다. 우리의 지원 공동체가 전 세계적인 공동체임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의 상황은 매우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교사들을 지원하는 일에 동참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신실하게 기도하라. 자신이 거주하는 곳의 지회 사무실에 연락해 지회에서 봉사하는 선교사에 대해 알아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 일별, 주별, 월별로 한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 또 특정 국가나 지회에서 봉사하는 선교사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 의료·교육 기관에서 일하는 선교사를 위해 기도할 수도 있다. 가능하다면 그 가족에게 연락해 무엇을 위해 기도할지 물어보라. 연락할 수 없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목적 의식, 신성한 만남, 역경에 직면했을 때 용기 주시기를 기도하라. 그들에게는 힘, 건강, 회복력 있는 결혼 생활이 필요하다. 그들의 개인적인 삶을 위해 기도하라. 타 문화권에서 자녀를 키우는 법을 익히는 이도 있고, 해외 학교에 다니는 자녀와 떨어져 지내는 이도 있다. 노부모 부양 문제로 고민하는 이도 있다. 그들이 선교 봉사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동안 하나님의 임재에서 오는 지혜와 평안으로 축복받기를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그들이 봉사의 여정에서 기쁨을 경험하기를 기도하라.

소포를 보내라. ‘고향’에서 온 택배 상자를 여는 것만큼 신나는 일도 없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보낸 소포를 서로 열겠다고 다투던 자녀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먼저 상자를 여는 사람은 확 느껴지는 ‘고향’의 정취를 느낄 수 있으니 당연했다. 고향의 냄새는 오래가지 않지만 정성으로 포장한 장난감, 책과 티셔츠에서 느껴지는 사랑은 오래간다. 나와 남편을 위해 보내 준 간식은 우리에게 ‘고향’의 맛과 즐거움을 선사해 즐겁고 안도감을 주는 작은 휴식의 시간이 되었다. 여러분의 나라나 지회에서 봉사하는 선교사 중에도 ‘고향의 맛’을 느끼면 좋아할 이들이 있을 것이다.

선교사의 결혼 생활을 도우라. 선교 현장에서 마주하는 삶은 분주하고 스트레스투성이다. 일에서 오는 정규적인 압박뿐 아니라 수많은 어려움을 확인하고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는 데서 오는 압박감도 있다. 선교사의 삶은 24시간 애쓰는 삶이다. 이는 선교사에게 자신들의 결혼 생활에 할애할 시간이 없다는 의미이다. 데이트에 사용하도록 기프트 카드를 보내거나 연차 휴가 기간에 부부 동반 휴가를 위해 선교사 부부를 지원하는 일도 큰 힘이 된다. 이 모든 게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표시인 것이다.

선교사의 십 대 자녀를 친구 삼으라. 선교사의 자녀가 되는 일은 흥미진진하기도 하지만 도전으로 가득한 삶이다. 선교사의 십 대 자녀들이 겪는 어려움은 학교 생활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일이다. 여러분이 고등학교나 대학교 근처에 살고 있다면 친구가 되어 줄 선교사 자녀들이 있는지 살펴보라. 연구에 따르면 국제 이주로 인한 상실 등을 포함한 부정적인 어린 시절의 경험은 긍정적인 경험으로 상쇄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지지적인 환경에서 감정을 표현하거나 자신의 행복에 관심을 쏟고 지원해 주는 어른들을 만나는 것이다. 여러분이 선교사의 십 대 자녀나 청년의 멘토가 될 수도 있다. 선교사 자녀를 둔 부모라면 그런 노력에 감사할 것이며 여러분은 선교사 자녀의 삶에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선교사를 격려하고 보살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이미 몇 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더 많은 아이디어가 필요할 수도 있다. 도움을 줄 시간이나 재정이 넉넉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선교사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면 좋을지 알려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수입이 많지 않은 어느 은퇴자 교우에게 매년 휴가 때마다 초콜릿칩 꾸러미를 선물로 받아 우리가 아이들에게 쿠키를 만들어 주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단순한 호의였지만 우리는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단언컨대 여러분은 무엇을 하든, 그 선의의 행동이 크든 작든 변화를 이루어 낼 수 있다. 함께라면 우리도 선교사들이 선교 현장에서 살아남을 뿐 아니라 선교사 소명에 성공하는 데 필요한 보살핌과 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


에이미 위쳇 대총회 국제 봉사자 돌봄 및 지원 관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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